옛 사냥의 서글픈 해프닝 (잡아 오라는 꿩은 못 잡고 "이"만 잡아 온 이야기)

 

금렵(1972년 4월)전, 그러니까 1960년대에는 서울도 심했지만 시골은 여름엔 빈대가, 겨울엔 이가

더 극성을 부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집에 목욕탕이 있는 집은 거의 없어 겨울에 공중목욕탕은 구정 전에만 겨우 한

번 갈까 말까하는, 또 머리는 1~2주일에 한 번은 매우 자주 감는 것이요, 보통 한달만에 감았으니 어

떻겠는가?

아니, 한두 달이 넘게 또 겨울 내내 목욕도 못하고 머리도 못 감은 애들도 많았다.

더욱이 시골은 공중목욕탕도 군청소재지나 가야 있었기 때문에 더 엄두를 못 내었다.

또 집에서는 물을 데울 땔감을 아끼느라(너무 못 살아서) 감히 자주 목욕이나 머리를 감을 수가 없었

다.

따라서 남자보다 여자들에겐 머리에 서캐("이"의 알)나 "이"가 들끓어 자주 참빗으로 훑어서 잡곤

했으니 물론 속옷엔 "이"가 들끓게 마련이었다.

이 "이"는 점점 생활이 나아져 목욕문화가 발달되면서, 또 "빈대"는 산림녹화로 연탄을 쓰기 시작하면

서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요사이 젊은 분들은 "이"나 "빈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것이다.

하여튼 "이"가 끼면 가려워 미치고 빈대에 물리면 지금 모기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괴로우니 그 시

절은 참으로 살기 힘든 나날이었다.

또 시골은 너무도 양식이 부족해 입을 줄이기 위해 딸들을 서울로 식모살이로 보내 밥만 실컷 먹게

해주고 시집만 보내 주면 된다고 하여 사냥차에 꽤 여러 번 데려온 적도 있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니(1965년 1인당 국민소득 76$이었음, 북한은 195$) 식당이나 약국, 병원은 군청

소재지 밖에 없었고 그 땐 버너나 보온밥통이 없어서 사냥꾼들은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괴로웠

다.(석유버너나 보온밥통은 71~2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음.)

10, 11월이나 2, 3월(1960년대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엽기)은 그래도 따듯하여 떡이나 빵,

도시락으로 대체할 수 있었으나 12, 1월 너무 추울 때는 고통이었다.

 

선친께선 항상 시골서 올라오는 환자들을 극진히 대해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겐 돈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셨으며 또 12월 중순에는 늘 환자기록부에 올라 있는 사람에겐 달력을 보내 주셨다.

그 때에는 워낙 달력이 귀한 시절이라 그것을 받은 사람들은 여름엔 낚시 잘된다고 편지도 해 주고

겨울엔 꿩이 많이 내려온다고 연락이 와 늘 즐겁게 낚시와 사냥을 즐기셨다.

또 모르는 고장에 가면 면사무소 뒷산에 오르셔서 어떤 집이 제일 잘 사는가 하고 내려다보시고 저

양옥집으로, 없으면 이 함석지붕이 있는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 집에 가시면, 선친께서 "이리 오너라!" 아니면 내가, "계십니까?"하여 그집 가장을 불러 사랑채든

방이든 들어가서 서로 맞절을 하시면서 "서울서 내려온 박 아무개 옳습니다. 이 댁이 이 동네에선

일 유족하단 말씀을 듣고 점심 한 끼 부탁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러면 그 쪽에선 "어이구,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찬이 없어서 어떻게 하지요?"

이렇게 수인사가 끝난 후 군불을 때고 준비하다 보면 1시간 이상 흐른다.

또 식사가 끝나고 돈을 지불하려고 하면 절대로 안 받는다.

그래서 늘 밥그릇 밑에 몰래 돈을 놓고 오거나 주인집 애들이 있으면 학용품을 사라고 주면 마지못해

 받곤 했다.

 

1967년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꿩이 많다고 편지가 왔다.

2월인데 아직도 들판에 벌겋게 내려온단다.

꿩이 2월에 벌겋게 내려온다는데 가지 않을 포수가 어디 있나?

그 주말 바로 선친을 뫼시고 초대한 사람의 안내를 받아 사냥을 시작했는데 봄철이라 꿩이 너무 약아

사정거리 전에 미리 다 나르니 꿩만 실컷 구경하고 한 번도 제대로 불질도 못하고 헤매다 주인집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다 아픈 환자들이다.

서울서 유명한 명의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사방 20리 환자들이 다 모인 것이다.

그런데 선친께선 하나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시고 일일이 환자를 다 돌보시는 것이다.

가져오신 비상 침으로 조치를 하시고 약이 필요한 환자는 일일이 메모를 하시어 약을 지어 내려 보낸

다고 약속을 하시는 거였다.

그것도 무료로.....

그 동안 나는 밥을 짓느라고 군불을 따듯하게 땐 방바닥에 앉았다가 좀 피곤하기도 해 옆으로 쓰러져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밥을 먹으라고 깨우는데 환자들은 다 가고 없다.

그 때 그 큰 밥주발에 얼마나 수북히 올렸는지 밥을 흘리지 않고 먹느라고 무던히 애를 썼다.

또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 1/3이상을 남겼다.

무슨 젊은 양반이 반도 못 드느냐고 핀잔을 들어가면서..... 지금 그 양을 따지자면 요새 우리가 먹는

 밥공기보다도 한 5배 이상은 되리라고 본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니 꿩을 잡아야겠는데 사냥 길에 내려가는 데는 괜찮으나 올라가는 데는 좀처

럼 움직이기 힘들었다.

할 수 없이 너무도 힘들어 개만 믿고 멜방 총을 하고 어슬렁어슬렁 가는데 느닷없이 내 발 앞에서,

꽈드등! 꺼겅! 꺼겅! 껑!" 하면서 선달님(장끼)이 힘차게 솟아오르는데 너무도 다급하니 총이 벗겨지

지 않아 유효사거리가 다 지나서야 겨냥을 하게 되었으니.....

쏠 수가 있나?

"야! 이 형편없는 똥개 놈아! 넌 뭐하고 있었냐? 으이그! 냄새라도 달았으면 잡는 건데..."

사실 개한테 핑계를 댔지만 포인(pointing)을 받았어도 잡을 확률은 별로 없었다.

그 땐 왕초보 땡포 시절이었으니까.....

어쨌든 그 날 한 마리도 잡지를 못하고 귀가를 했다.

 

목욕을 끝내고 선친을 모시고 반주에다 맛있는 저녁을 마친 후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옆에 고이 주

무시던 아내가 꽥 소리를 지르면서 깨운다.

"어머! 어머머! 이게 뭐야? 당신 빨리 일어나 봐요!"

"왜 그래~애~??? 졸~려 죽겠는데..."

"어머머! 빨리! 빨리요!"

"왜 또~? 으이그! 신경질 나게!!!"

어~! 어이구! 이런!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깨끗한 흰 요 위에 커다란 보리 톨 만한 시커먼 "이"가

슬슬 기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빨리 잡지 못해요? 잡으라는 꿩은 못 잡고 이딴 "이"나 잡아 오고... 자알 하는 짓입니다요!"

자기는 6.25동란 초등학교 때나 봤지, 처음 본다면서 너무도 징그럽고 근질거려 혼났답니다.

땡포라 당할 수밖에 없는 수모라기보다 그 때 현실이 너무 비참했지요.

그 후 아내에게서 내가 사냥을 떠나려면 항상 점심 들 때 절대로 시골집에서 누워 자지 말라는 소리를

무척 오랫동안 들어야만 했습니다.

“어! "이" 이야기를 하니 옛날생각이 나 자꾸 근질거려지네 그려!”

뜸부기 사냥에서의 해프닝

 

1970년 6월 하순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선친께서 목요일 오후 뜸부기 사냥을 가려는데 같이 가자고 하시니 그 때 백수인 이 땡포 박이 마다할

리 있나? 한 사람 더 같이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대학원 입학동기인 함운일씨에게 연락.

쾌히 승낙을 받아 같이 가기로 했다.

원래 뜸부기는 보잘것없는 새인데 그 시절은 너무 먹을 것이 없던 시대라서인지 사람에게 특히 남자

에게 효험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인기가 꽤 있어 부탁을 많이 받곤 했다.

더욱이 친구인 함운일씨는 해군 정보장교로 중앙정보부에 파견 나가 있어 상관에게 상납(?)할 수 있

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이 땡포 박에게 은근히 부탁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점심 먹고 엽장(獵場: 사냥터)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부탁을 받고 뜸부기를 잡으려는데 웬일이지 그 많았던 녀석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또 산에서 날라 내려오다 농사꾼이 논을 매는 것을 보곤 다시 산으로 올라가니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이 뜸부기 사냥철엔 항상 농사일이 바쁠 때라 여간 조심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 불질(총질) 하다가는 농군이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일 년에 몇 번은 농사꾼의 흰 바지를 입은 엉덩이가 황새로 오인되어 총에 맞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아마도 농사꾼이 논을 맬 때 엉덩이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니까 마치 황새가 먹이를 먹을 때

몸통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황새로 오인, 사격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오인 사격한 포수들의 말도 그랬다.

그건 그렇고.

멀리서 "뜸~북! 뜸~북!!" 울어 대는 뜸부기 소리가 들렸다.

좀 높은 곳에 올라 지형을 살피니 멀리 산 밑에 한 2천여 평 되는 큰 논에서 울고 있는 뜸부기가 조그

맣게 보였다.

삼각 편대를 짜 선친께서는 논 입구에 숨어 계시게 하고, 나는 오른쪽 높은 뚝 밑으로 몸을 숙이고 접

근하고, 친구는 일부러 농사꾼인양 총을 지게작대기처럼 메고 왼쪽 낮은 논뚝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

다.

그러나 뚝 위에 딱 올라서니 뜸부기가 안 보이는 거다.

이 뜸부기도 꿩보다는 훨씬 못 하지만 벼 사이로 살살 빠져나가 꿩이 논뚝을 기어 넘어가듯 납작 붙

어서 몸통을 길게 늘여 넘어가는 습성이 있었다.

나와 함운일씨는 소리를 질러가며 움직이니 그 뜸부기가 천천히 나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는

것이다.

원래 뜸부기는 꿩 같이 빠르지 못하고 그 속도가 꿩의 1/3정도의 속도로 나니 쏘기가 식은 죽 먹기다.

그 때 아직 사격장에서 많이 연습은 못 했지만 천천히 나는 뜸부기는 자신이 있었다.

천천히 겨냥하여 "탕!~탕!"

어~라, 안 떨어지고 그냥 가네!

다시 "탕!탕! 탕!"

5연발이 5발 다 불을 뿜는데도 그냥 비웃듯이 천천히 날아갔다.

선친께 "왜 안 쏘셨어요?"라고 여쭈어 보니, "난 네가 당연히 잡을 줄 알았지."하시며 겨냥도 안하셨

단다.

너무도 속상해 친구를 쳐다보고 "함형! 함형은 뭘 했소?".

못 잡고 괜한 분한테 화풀이다. 얼마나 창피하였으면.....

어!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소리, "나만 맞혔어!"

"뜸부기는 날라 갔는데 맞추긴 뭘 맞춰요?"

"아니, 박형이 쏜 총에 내가 맞았어!"

"뭐요? 무슨 그런 농담을..."

자세히 보니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한 손에 총을, 다른 한 손엔 배를 부여잡고 있었다.

총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총알같이 달려갔다.

"어디요? 어디?"

자기는 겁이 나 보지도 못하고 잔뜩 찡그린 채, "피 많이 나와?"

"안 나오는데? 어디 좀 봅시다!"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 치워 봐요!"

"그러면 안 되는데..."

완전히 죽을상이다.

"피 안 나와요. 손 좀 치워요. 확 뿌리치니 T샤쓰 구멍이 1mm 뻥 뚫렸다.

한 알이 반쯤 박혀 있다.

"괜찮은데, 멍이 조금 들었네!"하고 총알을 톡 치니까 피가 몇 방울 흐른다.

"그 아래 무릎도 봐줘요!"

바지도 1mm 뻥 뚫렸다.

"요기도 멍이 들었네!"

"이젠 봐요! 괜찮으니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총을 쏜 위치가 내 친구보다 한 길이나 넘게 위고 뜸부기는 거기에서 20m 더 높이 날라 갔는데

또 내 친구는 내가 쏜 방향에서 30m나 왼 쪽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어떻게 맞을 수가 있었을까?

내가 쏜 방향 40m쯤 맞은편에 야산이었으므로 그 산으로 가 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산이 온통 바위산인데 그 산을 담장이와 잡풀이 뒤 엉켜 덮

고 있으니 총알이 그 바위를 맞고 비스듬이 튕겨 나가 우리 친구를 맞혔던 것이다.

 

안도의 숨을 "휴~!" 쉬었지만 얼마나 놀랬는지 사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뜸부기를 잡아 주기는커녕 얼마나 친구를 놀라고 겁나게 했던지 너무 미안해 술을 거나하게 샀

다.

백수가 무슨 돈이 있나? 선친 돈 힘으로 샀죠!

또 우리 친구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갖고 너무 호들갑 떨어 자기 친구도, 친구 부친도 놀라게 해 드려

너무도 미안하다고 2차를 코가 비틀어지도록 내니 그 동안 백수라서 못 벗긴 목구멍 때를 확실하게

겼고 너무 화끈하게 벗겨 이튿날도 하루 종일 헤매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 끝 )

 

 

 

땡포 박이 초년병을 벗어난 이야기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1965년 졸업 후 사업이 바쁠 때엔 어느 해인가 1, 2년을 거의 쉬다 시

피하고 수렵 4년차 일 때(1971년인 듯?)의 이야기다.

우리 개 "케리(암컷: 숫 세타와 암 영포와 1대 잡종: 2살)"를 작년 1개월 동안 훈련 시켜 코 만 뚫어

준(꿩 냄새를 알게 훈련시킨), 경기도 여주군 이포에 사는 조 포수가 선친한테 신세를 졌다고 사냥을

초청했다.

밭에 땅콩을 많이 심었더니 꿩이 아주 많다고..... 꿩이 많다는데 가지 않을 사냥꾼이 어디 있나?

 

일요일 새벽 통금 해제사이렌이 울리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 때에는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

선친께서 조 포수에게 "우리 큰 아이하고 공렵(共獵)하여 한 수 좀 가르쳐 주시오!"라는 말씀을 귓등

으로 듣고 나는 조포수와 함께 "케리"를 데리고, 선친께서는 "로미(동생 개)"를 데리고 아래 밭쪽으로,

우린 묵밭(경작하다 버려진 밭)이 있는 산 쪽으로 따로따로 사냥을 했다.

막상 나서고 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워커힐" 사격장에서 배운 솜씨를 한 번 발휘해 보자.

"케리"가 수사를 하는데 내 옆 우측 방향 15m 앞에 있는 조포수 쪽에서 커다란 장끼가 날았다.

조 포수 총은 유궤두 총열 30" 수평 쌍대(full choke)이므로 빨리 쏠 수는 없었다(총열이 길수록 산탄

이 퍼지지 않아 늦게 쏴야 함).

나는 부라우닝 5연발 평통(modified) 총열 28"를 가지고 사격장에서 쏘는 식으로 재빨리 쏘니 한방에

"털 퍼덕!" 명중.

"야! 미스터 박! 자네 어디서 배웠어? 기막히게 빨리 쏘는데!"

조 포수는 전에 나하고 여러 번 공렵(共獵)을 해 봐서 아직 초보 티를 못 벗은 땡포인 줄로 아는데 뜻

밖이란 말이리라.

그 때만해도 사격장에서 연습을 한 사냥꾼은 거의 없었고, 빨리 쏘면 무조건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

또 사격장이 있는 줄도 잘 몰랐고 비용이 많이 들어 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음엔 꿩이 조 포수 앞에서 날라 왼쪽 내가 있는 쪽으로 전광석화같이 도는데 조포수가 먼저 "탕!".

이 꿩이 나를 보고 다시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휘니 또 "탕!". 헛발.

나는 스키트 사격장에서 터득한대로 꿩을 따라 가며 끌어 쏘니 정확히 명중.

조 포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내가 알기로는 직업 포수들은 대개 꿩이 마음껏 날라 다 방향이 정해진 다음(직업 포수들 말은 꿩이

똥을 싼 다음) 5~60m에서 쏘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날 꿩은 전부 포인을 받지 않고 미리 나는 것이다.

따라서 속사를 해야 명중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엔 내 앞에서 나는데 조포수도 화가 났는지 질세라 먼저 "탕!".

그러나 그 총은 30" full choke(총구가 작다는 말: 멀리 가서 퍼짐: 돼지나 노루를 사냥하는데

적격)인데 맞을 수가 있나?

내가 "탕!"하니, 또 명중.

이렇게 해서 1시간 반 동안 4마리를 먼저 잡으니 조 포수는 완전히 소태 먹은 얼굴이 되었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완전히 넉 다운(knock down) 시킨 꼴이 되어 버렸다.

어! 그런데 아래쪽에서 사냥하시던 선친께서 안 보이는 것이다.

"아버님! 아~버~님~!" 소리를 쳐도 응답이 없으신 거다.

뒤돌아 한참 뛰어가 보니 쓰러져 계셨다.

"너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데 왜 이제야 오니?"

무척 아프신 듯 괴로워 하셨다.

"언덕 아래에 계시기 때문에 제가 못 들었나 봐요. 많이 다치셨어요?"

가파른 언덕에서 2번이나 구르셔 정강이뼈가 보일 정도로 파여 피가 많이 흘러 내리셨다.

다행히 아내가 약사라 응급조치 약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붕대가 있나?

응급조치를 해 드리고 급한 대로 옷을 벗어 런-닝 샤쓰를 북북 찢어 지혈을 해 드렸다.

또 상처가 덧나지 않으시도록 테라마이신(항생제)도 잡수시게 해 드렸다.

병원에 가시자고 해도 막무가내셨다.

선친께서는 비록 한의사셨지만 6.25동란, 1.4후퇴 피난시절 면 공의도 하셔서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셨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시고 나시더니 "웬 총을 그렇게 많이 쏘았느냐?"고 물으시다 내 배낭을 보시더니 깜짝 놀

시면서, "야, 그게 다 꿩이냐? 몇 마리나 잡았느냐?"

아프신 것은 다 잊으셨나 보다.

금방 환하신 얼굴로 "네가 다 잡은 거냐? 나는 내려 갈 터이니 너는 사냥 더 해라!"

사냥이요? 더 할 수 있나요?

선친을 부축하여 차로 모시고 가니 기사는 총에 다치신 줄 알고 놀라 병원으로 모신다고 난리였다.

조 포수 쪽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났다.

기억으로는 열 발은 족히 더 쏜 것 같았다.

한참 기다리니 조 포수도 내가 안 올라오니까 궁금해서 내려 왔다.

그런데 매단 꿩이 하나도 없다.(그 때는 워낙 어려울 때라 조끼를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 탄띠에 매달

았음.)

"햐! 오늘같이 총 안 맞는 날은 처음 보네. 원장님! 맏아드님 때문에 주눅이 들었나 봐요. 내가 한수

가르치기는커녕 내가 배워야 되겠는데요."

"그 동안 어디서 배웠는지 불질(총질의 옛말)이 기가 막힙디다. 나도 이젠 늙었나 봐요."

선친께서는 아프신 것도 잊으시고 몸을 좌우로 흔드시면서 "예끼! 이 사람! 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뜻밖에 너무 일찍 귀가하니 아내도 어머니께서도 놀라셨다.

그래도 선친께선 "큰 며느리가 응급조치 약을 챙겨 주었으니까 말이지, 혼날 뻔 했어. 얘야, 고맙다.

앞으로는 붕대도 챙겨야겠다."

사실 그 시절은 약국도 면소재지에는 거의 없었다.

군청소재지에 가야 자그마한 병원이나 약국이 있을 뿐이었다.

또 병원이 없는 군청소재지도 많았고 도청소재지에 가야 겨우 도립병원이 있을 정도였다.

그 후부터는 나는 항상 구급약, 소독약, 지혈제와 붕대를 꼭 챙겨 가지고 다닌다. (그 후 여러 번 우리

일행이나 개가 다쳤을 때 도움이 많이 되었음.)

 

다음날 선친 친구이신 최경록 회장님과 이두병 회장님께서 축하 전화를 주셨다.

"축하하네! 자네! 젊기도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하더니 이젠 우리 보다 월등히 실력이 있는 엽사가 되었

구먼!"이라 하시면서.....

아마도 선친께서 조포수는 꿩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우리 큰애가 1시간 반 동안 4마리나 잡았다고

자랑을 하셨나 보다.

 

이렇게 해서 사냥꾼이 되어 꿩을 잘 잡기는 했지만 전편에 이야기를 했듯이 몇 주 잘 잡으면 나도

모르게 건방져서 또 몇 주를 헤매게 되고, 또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비우면 잘 잡히고, 이것이 나이를

먹은 지금 까지도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땡포수 티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자꾸 반성을 하게 되면 헤매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사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진짜 땡포수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씁쓸하

다.

엽장(獵場)은 비좁고 게임(game:사냥 대상물)이 너무 없어 오래간만에 만나니 더 심해지는 것일까?

그야말로 꿩보다 사냥꾼이 더 많아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너무 먹어서일까?

 

땡포 박의 초년병 이야기(3)

    

여러 번 꽝을 친 형을 보다 못해 사냥 2년 더 선배인 동생이 말했다.

"형! 총 잘 안 맞지? 처음에 두 마리 잡은 건 완전히 후로쿠야! 억세게 운이 좋아 잡은 거지 총 쏘는

실력이 좋은 게 아니야! 군대 가서 배운 사격과 엽총 쏘는 것과 같은 줄 알아?"

어? 꿩도 못 잡아 약이 올라 죽겠는데 동생이 형을 놀려?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형! 화 내지 말고 나하고 워커힐 사격장에 한 번 가 볼래? 사냥 가면 몇 발 못 쏘지만 거기서는

2박스(50발) 이상도 쏠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어쩔 수없이 따라가서 연습을 했다.

동생은 많이 연습을 하였던 듯 7~80%이상 명중시켰다.

이것도 사격장 직원과 친숙하여 트랩사격 벙커 위에 서서 좀 천천히 날려 달라고 하여 (빠른 꿩 나는

속도보다 조금 빠름)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동생과 같이 선친을 모시고 여주 이포로 사냥을 갔다.

마침 눈이 살짝 와서 꿩 발자국 보기가 쉬웠다.

드디어 선친 명견 "렄키"가 별로 풀도 없는 날바닥에다 포인(pointing)을 했다.

우리가 포인한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장끼가 어제 내린 눈 때문인지 미리 재빨리 솟아올랐다.

사격장에서 배운 대로 총구가 따라가고 있는데 동생은 형을 의식한 듯 먼저 "탕!"

순식간에 꿩이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그냥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가는데 개는 못 본 듯 엉뚱한

곳을 라운딩(rounding)을 하고 있어 나 혼자만 죽어라고 쫓아갔다.

어? 그런데 꿩이 안 보이는 것이다.

꿩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손바닥만한 실파 같은 풀 앞 까지 발자국이 선명하게 났는데 꿩은 보이지도

않고 그 위 좌 우 옆 어디에도 자국이 안 보였다.

그 큰 장끼가 손바닥보다 작은 풀 속에 숨어 있을 리는 없겠고 날라 가지도 않았는데 기가 찼다.

그 때 동생이 헐레벌떡 쫓아 와서, "형! 꿩 못 봤어?"

내가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여기까진 기어 왔는데..."

동생이 "렄키! 렄키!" 부르니 이내 달려와 내 손가락 끝에다 척 포인하는 것이 아닌가?

"들어가!"하니 내 손가락 끝에서 장끼란 녀석이 "화다닥!"하며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불끈 솟아올라

내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코앞에 꿩이그 작은 풀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아 튀어 오르는 바람에 너무도 놀라 그만

 그 자리에 털석!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니? 그 작은 손바닥만한 풀속에 그 큰 장끼가 숨어 있다니.....

이때 동생은, "형! 사냥꾼이 꿩한테 놀라 자빠지면 어떻게 해? 그래 가지고 무슨 사냥한다고 그래?"

나는 얼굴이 빨개 가지고 옷을 툭 툭 털고 나니 너무도 쑥스러웠다.

우리 개 "렄키"는 날개가 부러져 도망가는 장끼를 턱 물어 선친한테로 가져가니 개한테도, 동생한테

도 창피했다.

선친께서는 우리를 보시더니 "응! 또 큰 애가 잡았구나!" 하시니 더욱 더 부끄러울 수밖에.....

그야말로 사냥 선배인 동생한테 한수 배운 하루였다.

 

그 후 비 수렵기에 동생을 따라 여러 번 사격장엘 갔고 또 열심히 견착(肩着) 연습, 좌우 스윙연습, 또

체력 단련 등으로 실력 연마에 몰입을 했다.

2년이 지난 다음엔 사격장에서 트랩사격을 80%이상 명중시킬 수 있었고 스키트 사격도 부라우닝 5

발 28"로 25발 중 가끔 20발 이상 맞출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오히려 사격장 관리인은 선수로 등록해 보라고 권유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침착해야 된다는 것,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

고, 또 사냥과 개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헌 책방을 뒤지기도 했고 대영백과사전(Britanica)을 들

추기도 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이 서서히 나를 사냥꾼다운 사냥꾼으로 만들게 한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총을 잘 쏘지도 못 하지만 잘 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지도 않

는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자신이 있다고 건방진 생각을 하면 그 즉시 총이 안 맞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

다.

그러나 또 좀 잘 잡히면 다시 바로 이 건방진 생각을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진정 겸손한 사냥

꾼이 되기 쉽지 않으니 어찌 해야 될까?

겸허한 사냥꾼이야 말로 진정한 사냥꾼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정말 풀기 힘든 영원한 숙제일 것 같다.

 

( 계속 )

 

 

땡포 박의 초년병 이야기(2)

 

꿩을 쉽게 잡으니 너무도 재미있었고 상도 탔으니 제법 우쭐해졌다.

우리 가정부 집이 괴산군 장연면인데 꿩이 많다고 전갈이 왔다.

1966년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당시에는 10월 1일부터 다음해 3월 말까지 6개월이 수렵 기간이었

다.

11월 하순 경 선친을 모시고 장장 5시간을 달려 엽장(獵場)에 도착하고 보니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도멋진 사냥터로 기억됨) 정말로 꿩이 우글우글했다.

그야말로 "꿩 밭"이란 말은 여기를 두고 한 말이리라.

선친 개도 "럭키"라는 이름을 가진 명견이라 또 이 녀석이 내가 그전에 두 마리를 잡은 것을 기억하

는지 나만 따라 다녔다.

아마 내가 꿩을 잡은 이후 늘 밥도 잘 챙겨 주고 선친 보다 더 잘 걷기 때문에 나를 따른 것이리라.

그런데 오늘은 "포인"하고 날려 주고 하는데 쏘는 족족 헛방이다. 그것도 두 방도 못 쏘고, 꼭 한방씩

밖에 쏘질 못했다.

왜냐고요?

한방을 쏘면 꼭 꿩이 똥을 싸면서 방향을 트는 것이 총에 맞아 떨어질 것 같이 보여 기다렸던 것이다.

25발 넣은 탄띠는 점점 다 비어오고 초조해 지는데 지난 밤 너무 흥분해 잠은 한숨도 못 잤지, 개를

따라 뛰어다니느라 너무 힘들었지, 다리에 쥐가 나는데 얼마나 심하던지 온몸이 뒤틀리고 꼼짝 못하

게 되어 쓸어 쓰러졌다.

한참 있다 보니 산 아래에서는 난리가 난 모양이다.

선친께서는 총소리는 계속 났지, 포수는 함흥차사지, 사고가 나서 연방 총을 쏜 줄 아시고 걸음 빠른

가정부 부친을 올려 보내시고, 또 선친께서도 너무 걱정이 되셔 바삐 올라오고 계셨다.

그 양반 올라와 보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포수란 친구는 자빠져서 얼굴을 찡그리고 꼼짝 못하고 있지, 옆에 총은 아무렇게나 나둥그러져있지.....

"도련님! 많이 다치셨습니까?"

"아니에요... 다리에 너무 쥐가 나서....."

"아니 쥐라니요?"

시골 사람들은 심한 노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쥐라는 것을 모를 수밖에.....

부축하여 겨우 내려오니 동네 사람 다 모여 난리다.

포수가 자기 총에 맞은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알고 보니 너무 한심한지 "무슨 포수란 작자가 산을 날라 다녀야 되지 조금 걷다가 쓰러져?"

"땡 포수야, 땡 포수!"

"아냐! 신작로 포수지!" 이구동성이다.

그 때 어찌나 창피하던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선친께서는 마음이 놓이시던지,

"얘! 안 다친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그런데 왜 그리 총을 많이 쐈니?"

"꿩은 무지하게 많았어요. 그런데 한 마리도 안 떨어지네요."

"그래. 꿩이 많고, 또 떼 꿩도 만나게 되면 너무 다급해져 빨리 쏘게 마련이지."

선친께 너무 죄송했다.

꿩을 못 잡은 것도 그렇지만 많은 동네 사람 앞에서 아들이 창피당하는 꼴을 보여 드렸으니 정말로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그래. 네가 좀 허약해졌나 보다. 보약 한재 먹어야 되겠다."

 

선친께서 아들에 대한 사랑이 이렇듯 지극하신데 내 어찌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젖지 않을 수 있

 겠나?

비록 꿩은 못 잡았어도 부자지간의 사랑을 담뿍 담은, 기억에 남는 사냥 길 이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총을 잘 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운이 없어 못 잡은 줄로만 알았다.

이 건방진 생각이 여러 번 골탕을 먹고, 두 해를 더 보낸 뒤 3년차를 지나 겸손해진 다음에야 서서히

포수다운 포수가 될 수 있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