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집 "꿩 전문 사냥꾼"이 된 사연

1986년 2월초 신당총포버스를 타고 내려와 경북 안동 도산서원 약 4~5km 못 미쳐(와룡면인 듯?)

왼편으로 2~3km를 들어가니 장산과 야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꿩 사냥터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날 아내는 아이들이 시험 때라 못 오고 노한성 선배님도 참석하지 못하셔 부득이 3살 된 애견 "케미(잉글리쉬세타)"만을 데리고 혼자서 사냥을 하게 되었다(동생 박원장은 친구 유탄에 맞은 경미한 사고를 당해 몇 년간 수렵을 안 했음).

그런데 신통한 것이 내가 생애 두 번째로 직접 훈련을 시켰던 조렵견(鳥獵犬)인데 첫해는 겨우 포인,

다음해는 운반, 3년에는 선불 꿩(총에 맞아 날개만 부러진 꿩) 회수도 잘해 매우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전문적으로 사냥개를 훈련시키거나 판매하는 훈련소 같은 곳은 없어서 서로 수렵 동호인끼리 조달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훈련기나 beeper는 구경할 수도 없었고 개들은 주먹구구식의 나름대로 훈련을 시키거나 그냥 끌고만 다녔다. 또 혈통이나 순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개 없이도 11, 12월엔

하루에 2, 3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엽견(獵犬)이 없는 포수도 많았다.

따라서 포인터 탈을 쓴 녀석은 포인터, 털이 길고 세타와 비슷하게 생긴 녀석은 세타, 이 정도였다.

그래도 가끔 한 총포사(버스 1대)에 소위 명견은 한 두 마리씩은 있었다.

그 중에 우리 개 "케미"가 낀것이다.

내가 남보다 월등하게 꿩을 많이 잡았음으로.....

그 날 우리 "케미"하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집에서 싸가지고 온 도시락도 같이 즐기면서 재미있게

사냥을 했다.

"아! 혼자서도 자기가 사랑하는 개만 있다면 외롭지 않고 즐겁게 사냥을 할 수 있구나!"를 처음으로 깨

달은 날이기도 했다.

하여튼 이 "케미"는 포인하는 것이 특이했다.

일단 꿩 냄새가 나면 예비 포인을 하여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또 포인하다 쳐다보고, 이런 반복

동작을 내가 자기 뒤에 따라붙을 때까지 계속하다가 내가 따라붙으면 꿩을 추적하여 정식으로 포인하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꿩을 미리 나르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포인한 꿩이 없으면 반경 2~30m로 라운딩(rounding)하여 찾아내는 것이 장차 명견될 소질이 다

분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둘이 사냥을 즐기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많이 빼먹었음에도 등에는 묵직하게 6

리나 들어있었다.

내가 빼먹었을 때 "케미"는 떨어진 줄 알고 한참 라운딩하여 찾다 포기하고 지쳐서 올 때 나는 쓰다

듬어 주며 "케미씨! 미안해! 땡포라 잘못 쐈지?",

또 한방에 떨어트렸을 때는 "야! 케미야! 어때? 나 잘 쏘지?" 하면서.....

어느덧 버스 도착시간이 40여분 밖에 남지 않아 부지런히 발길을 돌리던 중 큰 장산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개가 안 보이는 것이다. "케미! 케미!" 큰 소리로 불러도 기척이 없다.

고라니를 따라 갔나? 혹시 선불된 꿩을 따라 갔나?

가끔 남이 선불시킨 꿩을 물어오는 경우도 있어 잠시 기다리다 보니,

어~라?

앞 높은 산 중턱에서 고라니가 아닌 큰 노루(옛 선배포수들은 "대작"이라 불렀음: 보호 조수)가 나무를

슬슬 비켜 가면서 내 앞으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너무도 큰 노루(엘크 암사슴 정도?)가 내가 서있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돌려 개만 쳐다 보

면서 슬금슬금 내려오니 내 심장은 딱 멈쳤다.

점점 더 가까이..... 내 앞 15~7m에서 개만 쳐다보면서 뚝 서 버렸다.

이 노루는 아직 나를 못 본 눈치다.

멀리 뛰는 고라니만 보았지(그 땐 고라니가 무척 귀했다) 난생 처음 큰 노루를 본 순간 욕심이 끌어 올라 내 가슴은 너무 긴장이 되어 쿵더쿵 쿵더쿵 뛰었고 노루도 그때서야 나를 힐끗 보더니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적으로 서로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아마 노루가 나를 제대로 못 봤는지도 모른다).

그 때 선친께 물려받은 스페인제 쌍대 12ga. 총열 28"에는 앞 방아쇠에는 5호 철이, 뒷 방아쇠에는

4호 철이 장전되어 있었다.

내 생각엔 뒷 방아쇠 4호 철이면 가능할 것 같아 또 4호 철보다 더 강한 총알도 없어 재빨리 견착(肩着)을 하고보니 노루의 전신은 소나무에 가려져 목 위 부분만 보였다. 순식간

에 머리를 겨냥을 하는데도 제 자리에 말뚝같이 서있었다.

노루의 얼굴을 향하여 뒷 방아쇠를 짜는 순간 왠지 노루의 목이 소나무 속으로 쏙 들어갔다.

"탕!" 총알이 나가 나무 위를 뿌리니 노루가 놀랐는지 목이 소나무 위로 불쑥 솟아올라, 다시 앞 방

쇠로 재차 격발(擊發)을 했다.

"타~앙!"

노루는 제 자리에서 한 두어 길 치솟더니 자기 허리가 넘는 소나무를 껑충껑충 뛰어 넘으면서 허연

크고 큰 엉덩이를 뒤로 하며 유유히 산을 넘어가는데, 개는 열심히 따라가고.....

아! 앗불싸! 내가 너무 무리한 욕심을 내었구나!

잡은들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혼자서 버스길까지 끌고 나갈 것이며 (그 때엔 경운기도 드물었음) 또

틀림없이 목과 얼굴을 맞았으니 살 수는 없을 터.

또 수렵할 수도 없는 보호조수인데 총을 쏘다니 내가 미쳐도 유분수지.....

공연히 죽여 보냈으니 내 순간적인 과욕과 망동 때문에 아까운 생명을 버리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또 더욱이 법규를 위반한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후회막급이었다.

한참 있다가 쫓아갔던 애견 "케미"는 돌아왔으나 혀를 길게 빼 내밀며 힘들어 하고 있었고.....

버스에 오른 후 내내 그 노루 생각이 내 뇌리에 꽉 차 "쏘지 말 것을... 쏘지 말 것을....."

너무도 아깝다! 바보 같은, 탐욕에 눈이 먼 한 사냥꾼의 순간적인 실수로 수(壽)를 다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자꾸만 귀하디귀한 그 노루의 천진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이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잡은 꿩도 귀찮고 모든 것이 다 싫어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른 엽사(獵師)님들 께 드리라고 다 내던졌다.

이제부터는 노루든, 고라니든 간에 네발 달린 것은 잡지 말자!

오직 꿩만 잡자!

사냥은 "꿩으로 시작해서 꿩으로 끝난다"든 옛날 어느 영국의 왕실수렵가의 말도 있지 않는가?

또 그분은 "회수 못할 게임은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매우 언짢아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짐승을 쏘지 않

기로 한 것은 매우 잘 내린 결정이라며 내 마음을 다잡아 주었다.

그 이후 아무리 내 앞에서 나가는 짐승이라도 거의 한 번도 쏜 적이 없다. (딱 한 번 부탁으로 토끼를

쏜 적이 있음.) 쏘지 않고 겨냥만 하면서 "너 오늘 운수 대통인 날이다! 잡히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

아라!"라고 할 때면 뒤에 있던 아내 정포(정포수)는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 줄 알고 "쏘지 마세요! 쏘지

말아요!!!" 소리를 쳤었다.

겨냥을 풀고 빙긋이 웃으면 아낸 따라 웃으면서 "에이! 쏘는 줄 알았네!"하며 안도의 숨을 쉬곤 했었다.

이런 일이 몇 번 있고부터는 아내도 나를 믿는다.

절대로 짐승은 안 쏜다는 것을.....

과연 땡포 박은 바보 같은 반쪽짜리 사냥꾼이 아닐까? 마음이 너무 여리고 여린.....

언젠가 아내 정포와 같이 사냥하다 토끼를 쏘니까 아내의 격한 목소리, "왜 쏴요? 고라니도 안 쏘는

양반이 토끼는 뭐 하려고 쏴요? 정신 있어요? 없어요?"

되게 혼났다.

그러나 쏜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옆에 같이 사냥하던 박상무가,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처

약을 하려고 특별히 부탁을 드린 겁니다." 하니, 금방 새 빨개졌던 얼굴이 펴지면서 "여보! 속도 모르고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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