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같은 꿩에게 당한 이야기(1)

     낚시꾼은 "뻥"이 많다.

엊그제 주말에 3, 4치 짜리 붕어 몇 마리 잡고서는 오늘은 손바닥만한 놈이라고 "뻥"튀기하고 다음

날엔 준, 월척으로 둔갑을 한다.

또 잔챙이 몇 수하고는 뼘치로 한 삐구(살림그물) 잡았노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데 사냥꾼은?

이 꾼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겨우 까투리 한 마리 잡고서는 며칠 뒤 5마리 떨궜는데 개가 시원치 않아 장끼는 다 놓치고 겨우 까투

리 한 마리만 주워 왔다나.....

여지껏 잡은 꿩 중에 제일 큰 장끼, 아마 그렇게 큰 장끼는 꼬리가 얼마나 긴지 내 생전 처음 본다는

식이다.

또 중개(犬)만한 고라니를 잡고서는 송아지만한 노루를 잡았다고 "뻥"치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이 과대포장 된 "뻥"을 우린 재미있어 하고 서로 맞장구도 치고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 같

이 "뻥"을 치면서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꿩에게 당한 이야기는 절대로 "뻥"이 아니다.

필자는 "뻥"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이 귀신같은 꿩들도 엽장(獵場:사냥터)이 너무 좁아 만날 수가 없어 안타깝다.

다음 이야기들은 사냥꾼이 별로 많지 않던 시절, 엽장을 2개도(道)씩 풀어 사냥터가 넓었던 시절 이야

다.

   첫째 이야기 : 84년 경남 합천군 쌍백면에서 당한 이야기.

 그 때에는 자가용 승용차가 있어도 길도 나쁘고 시간이 많이 걸려 주로 각 총포사 단위로 관광버스로

 출렵(出獵:사냥)했기 때문에 필자는 만리동 소재 서부총포사(대표: 박등용 선배엽사님)를 다녔다.

 

수렵이 끝나는 마지막 달, 2월 첫 주 일요일 오후 3시경 합천군 쌍백면에서 오른쪽엔 장산이 펼쳐 있

고, 골짜기 계곡 건너 가파른 산, 계곡 도달까진 갈대숲이 깔려 있으며, 입구엔 논과 콩밭이 있어 꿩이

 서식하기 좋은, 그럴싸한 훌륭한 엽장(獵場:사냥터)이 한눈에 들어왔다.

기대를 걸고 애견 "케미"(English setter)를 앞세우고 아내와 같이 들어섰다(그 당시 아내는 총이 없

었음. 1990년부터 소유).

들어서자마자 예비 포인(pointing)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앞에 총"을 하고 천천히 따라 붙으니 이번엔 본 포인!

"들어가!"

명령을 해도 안 들어가 혹시 떼 꿩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개를 살펴보았다.

갈대숲 안쪽으로 포인을 하고 눈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한 마리임엔 틀림이 없었다(떼 꿩인 경우는

 코를 벌름벌름하면서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임).

다시 "들어가!"

개가 안 들어가 갈대를 발로 차니 개가 후다닥 덮쳤는데 꿩은 안 날고 또다시 "포인!" 요 녀석이 무지

하게 약고 단련된 놈이라 직감하고 아내에게 부탁해 20m 앞으로 뛰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돌을 던지

게 했는데도 날지 않고, 개는 또 포인하고 나는 긴장하다 못해 초조해져 혹시 고라니???

아니, 고라니 같으면 벌써 튀었지...라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옮기려고 뒤돌아서는 순간, "꽈드등!!!"하

고 장선달님(장끼)이 일어나는데, 아까 소리쳤던 아내 쪽으로 갈대를 배로 깔고 얕게 나는 것이 아닌

가?

누가 계신데 감히 쏘나?

멍하니 꿩만 바라보고.....

정말 귀신같은 놈이네! 다음 주에는 꼭 다시 와서 잡아야지.....

못내 서운하고 안타까웠지만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주는 갈대숲을 서너 바퀴 돌아 내 숨을 거칠게 만들고 아내 뒤에서 날라 또 실패!

또 다음 주에도 마지막에 뒤돌아 반대로 뛰었는데 먼저 자리에서 소리 없이 살짝 날라 다시 실패!

요사스런 장끼가 사냥꾼을 가지고 노는 것 같아 무지하게 약이 올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요놈은 총을 가진 사냥꾼을 아는 것 같아 다음번엔 아내에게 지팡이를 지니게 하여 속여서 잡아야 하

겠다는 작전을 구상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하산.

    

드디어 시즌 마지막 주말이 왔다.

"오늘은 결판을 내야지!"하고 마음을 먹으니 긴장과 흥분에 휩쌓여 자꾸만 마음이 설레어지고 있었

다.

아내에게 등산지팡이를 지니게 하고 또 3시 30분경 엽장(사냥터)에 이르니 어쭈? 또 그 자리에서 포

인!

아내보고 지팡이로 "앞에 총"을 하고 있으라 하고 "‘케미’보고 들어가라고 해!"라고 소리치면서 나는

다시 산 윗쪽으로 내달렸다.

어~라! 그래도 이 녀석은 좀처럼 날지 않는 거다.

포인-덮치고, 포인-덮치고... 반복되는데.....

나는 앞 뒤로, 위 아래로 뛰어다니다가 너무 지치고 숨이 차 씩씩거리면서 아내보고 지팡이로 갈대를

치라고 했다.

그래도 이 여우 같은 꿩은 절대로 날지 않는 것이었다.

점점 더 조바심이 났다.

사냥버스는 곧 도착할 시간이고 그전에 꼭 잡기는 해야겠는데 절대로 날지 않으니 있는 대로 신경질

이 뻗쳤다.

다시 개가 포인하던 곳으로 돌아와 아내와 둘이서 주위에 있는 돌로 대여섯 번 팔매질을 해대도 날

지를 않는다.

이제는 개도 갈대숲으로 쫓아 들어가 보이지도 않았다.

나도 이판사판 빨리 결판을 낼 생각에 갈대숲속으로 쳐들어갔다.

갈대를 발로 막 차면서...

어랍쇼? 야! 이놈 봐라!

요 장선달, 요놈은 이때다 싶었던지 "꽈드등!!!"하면서 내 뒤에서 갈대를 헤치고 힘껏 솟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개가 숲속에서 내 뒤에다 포인 하고 있었나 보다. 갈대 숲속이니

안 보일 수밖에... 또 그땐 비퍼도 없던 시절이었다.)

"너! 요놈! 이젠 죽었다!"

이를 악 물고 갈대에서 재빨리 튀어 나와 총을 겨누니, 어~라??? 분명 꿩이 나는 소릴 들었는데 너무

눈이 부셔서 보이지 않았다.

요놈이 해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나는 것이었다.

할 수없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채 해를 향하여 "탕! 탕!" 유효사거리가 지나서 꿩이 보이길 래 아쉬

운 마음으로 "예라! 요놈아! 잘 가거라!"

마지막 축포 한방 "꽝~!"

 

너무도 기가 막히는 귀신같은 꿩이었다.

기운이 쑥 빠졌다. 그리고 허전했다. 너무도 속상했다.

미물인 꿩에게 이렇게 비참하게 당하다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있는가?

아내와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거친 숨소리만 토할 뿐 땀이 범벅이 되어 쓰디쓴 얼굴로 서로 멍하니

쳐다 만 보고 있었다.

잠시 뒤 마음을 진정시켰다.

“햐! 정말 기막히게 훌륭한 꿩이구나! 넌 살 자격이 있는 녀석이다!

축하한다!“

좋은 새끼 많이 낳아 몇 년 후가 될지 몰라도 네 새끼들하고나 겨루어 봐야 되겠지!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실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아직도 실력이 많이 모자라는 포수인가 보다.

앞으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더 끈기 있게 대처해야 되겠다고 반성하면서 너무도 탈진했는지 스르르 깊

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