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북 순창군에서 마지막 날 (2007년 2월 2일 : 쾌청)

 

간밤에 눈이 너무 왔다. 발목이 훨씬 더 빠지는 것 같다.

차고에서 짐도 정리하고 개밥도 주는데 김종훈님이 우리 "폴"을 유심히 살피면서 어루만지시는데 엽

(獵犬) 사랑이 보통이 아니다. 우리 "폴"보고 "그 녀석 참하게 생겼네!" 하더니만 자기차로 뚜벅뚜벅

더니 장끼 두 마리를 내 차에 싣는 것이다.

"어? 왜요? 힘들게 잡으신 걸 가져가셔야죠! 아이구! 이 땡포 박을 더 이상 땡포로 만드시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굳이 주는데 받는 것이 익숙치 못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여지껏 받아 본 적은 거의 없고 우리 일행에게도 일방적으로 주는 일 밖에 없는지라 계면쩍어진다.

할 수 없이, "감사합니다!"하고 받을 수 밖에.....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나? 되게 쑥스럽구먼!"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꽉 메운다.

이런! 어제 김성주님께서 잡은 한 마리, 김종훈님께서 준 두 마리 내가 잡은 한 마리 합이 네 마리다.

 

처음으로 김종훈님의 엽견(獵犬) 후렌치 부리타니 "닷"을 보았다.

어제 저녁을 먹으며 개가 너무 작아 "숏다리"라고 별명을 지었는데 엽욕(獵慾)이 굉장히 강해 자그마

도 꿩을 다른 개에게 절대로 빼앗기는 일이 없고 오히려 다른 엽우(獵友)가 떨어트리는 것도 곧잘 물

어 온단다.

우리 "폴"보다 좀 작기는 하나 숏다리는 아니고 다리도 제법 긴데 몸집이 좀 작을 뿐이다.

마치 애완견 같이 귀엽게 생겼으나 눈빛이 형형해 보였다.

 

오늘은 걷기가 힘들 것 같아 오전엔 복흥면 덤부사리가 많은 곳으로, 오후엔 첫날 금과면에 떼꿩이

았던 묘목농장으로 정하고 출발.

복흥면에 도착하고 보니 덤불은 많은 눈에 버티다 못해 쓰러져 있고 사람도 눈에 푹푹 빠져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 20분쯤 되었을까 김종훈님 쪽에서, "탕!" 김종훈님의 "닷"이 앞으로 내 달리는 게 보였다.

마치 자기만한(?) 장끼 그것도 묵치(나이 먹은 꿩)를 아주 쉽게, 능숙하게 물어온다.

장선달이 산에서 날라서 죽고 싶은지 자기 앞으로 나가 한방에 떨어트렸다나.....

우린 "축하합니다!"를 연발했다.

아무리 화창해도 이런 눈 속에서는 꿩을 발견하기가 무척 힘든데 행운이다.

아내 정포도, "총을 잘 쏘시나 봐요. 한방에 잡으시는 걸 보니..."

그리고는 두어 시간 동안 아무리 돌아 다녀도 꿩이 없어 산에서 내려왔다. 눈이 많이 내려 아직 높은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김종훈님이 전남 순천에 볼 일이 계서 공렵(共獵)을 마치고 서로 작별하게 되었다.

방금 잡은 꿩도 김성주님 차에 실어 놓고..... 또 김종훈님이 김성주님께 "내 차에 고라니가 있는데 한

마리 드릴까요?"하더니 선뜻 고라니 한 마리를 김성주님 차에 싣는다.

또 한 번 엽사들의 훈훈한 엽정(獵情)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쉽게 헤어진 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복흥면 소재지로 향하는데 마침 또 이승연님 전화다. 광주를

떠나 복흥면 4km전이란다. 하루만에 또 만났는데도 반갑다.

같이 즐겁게 점심을 나누었다. 밥값도 우릴 뿌리치고 먼저 계산하니 자꾸만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좀

망신스러웠다.

금과면으로 가긴 시간이 좀 일러 쌍치면으로 정하고 달렸다.

모두가 다 좋은 엽장(獵場)이다.

그림이 참 좋다.

 

벌써 양지엔 눈이 많이 녹았다. 눈이 녹으면 이틀동안 못 먹었음으로 꿩이 내려오는 것은 당연지사.

마을 하나가 보이는데 주변이 꽤 좋아 보였다.

김성주님과 이승연님은 산 윗 쪽으로, 나와 아내는 논과 밭 쪽으로 훑는데 산 위에서 "탕!".

조금있다가 또 "탕!탕!탕!" 두 분 다 꽝인가 보다.

우린 갔던 길이 너무 마을에서 떨어진 것 같아 다시 반대로 내려왔다. 집에 가까워야 꿩이 있을 것

아 내려오니, "폴"이 포인! 계속해서 기면서 날지 않던 까여사(까투리의 애칭)가 집 근처까지 와서 지

붕을 타고 난다.

다시 부지런히 다음 골짜기로 갔다. 막, 동네를 지나치려는데 마지막집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짚고 나

시다 우리를 본다.

"웬 나그네냐고?"

"꿩 잡으러 왔어요!"

집 뒤에서 쏴도 괜찮으니 꿩이던 짐승이던 다 잡아 가란다.

어! 마음이 놓인다. 기운도 난다.

집을 조금 지나치고 보니 얕은 계곡이 펼처져 있는데 산 쪽엔 드문 드문 작은 대나무숲이다. 그 밑

계곡엔 물이 흐르고 있고 오른쪽 옆엔 계단 논이 쭉 깔려 있다.

"오! 바로 여기다!" 하고 느끼는 순간, "폴"이 벌써 멀리 포인(pointing)한다.

"아! 꿩이 기는구나!" 라는 느낌.

정포와 함께 ‘앞에 총’을 하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한 열댓 발자국 떼었을까, "꽈드등!" 20m에서 나는 장선달이다.

"탕!" 어! 그냥 간다. 다시 재빨리 "탕!" 떨어지는데 선불(하우찌: 날개만 총에 맞아 잘 기는)이다.

"꽈드등!!!" 또 한 마리 장선달이 뜬다.

으이그! 총알이 장전되어 있어야지!

아내 정포는 그 때서야 도착하니 너무 늦어 쏠 수가 없었다.

이젠 떨어진 장선달이나 찾아야 되겠는데 두 마리가 날랐으니 "폴"이 정신이 없나 보다.

"폴! 폴!!" 물어 와!

떨어진 방향을 몰라 나를 쳐다 보길 래 그 쪽으로 돌을 던지니 쫓아 올라간다.

"앞으로! 위로! 뒤로!"

이 땡포 박 흥분했다.

어! 이런 젠장! "위로!"는 안 가르쳤지!

"뒤로!"라고 하자, "폴"이 뒤로 돌아서더니 척 포인!

포인 하자마자 쳐들어간다.

장선달께서 내려 뛰면서 퍼덕거리며 나는데 아내 정포는, "어머! 힘들겠어요!"

"왜? 쏘라고?"

태연하게 구경을 하는 이 땡포 박이 영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먼저 "리키" 같으면 한방 먹였을 터인데 말이다. '폴"이 점점 더 약이 올라 끝까지 쫓아가더니 이내

물어 온다.

"당신은 인제 확실히 "폴"을 믿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