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수렵 입문기

 

      "엽총" 하면 남자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죠.

그런데 여성으로, 그것도 자그마하고 가냘픈 여성이 엽사(獵士: 사냥꾼)라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

까?

저는 1990년 7월에 남편이 엽총을 수입하여 저를 사냥꾼으로 만들어 1990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같

이 출렵(出獵)하고 있으니 비록 총은 잘 못 쏴도 꿩이 어디에 많이 붙을지를 알 수 있는 고참 엽사(?)

된 것입니다.

     저는 5남매 맏이로 태어났고, 8남매 맨 위 그것도 10대 종손 며느리로 겁도 없이 시집을 왔으니

총을 쏠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은 타고 났다고 할까요? 

결혼해서 여러 해 시집살이 하는 동안 우리 남편이 제가 숨 좀 돌릴 수 있도록 가끔 사냥도, 낚시도

데리고 다니셨는데 저는 야외에 나가는 것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73년부터 긴 금렵기간이 시작되었을 때는 살림도 나고 해서 주로 낚시를 따라 다녔습니다.

또 남편이 너무 자상해 우리 가족 전부를 낚시꾼으로 만들어 가족낚시를 즐겨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

다.

82년부터 금렵이 해제되어 83년부터 버스로 출렵하여 남편을 따라 산과 들녘을 누비게 되자 잘 걷는

저를 보고 연세 드신 분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늘 그렇게 재미있게 남편과 같이 사냥을 따라 다니던 어느 날(아마 1990년 1월경으로 기억됨) 귀가

사냥버스 안에서 원로 엽사님들이 “너무도 잘 걷고, 열심히 따라다니는데, 왜 당신만 재미 보냐? 부인

한테도 즐길 수 있게 엽총을 사 주어라!” “능력이 없으면 우리가 보태 준다.”라고 야단들이셨습니다.

내가 방끗 웃고만 있으니까 남편은 찬성으로 알고 대뜸 뉴욕에 사시는 절친한 친구한테 부탁해 “후

랭키 5연발 20ga. 28"(2.5kg)“을 수입하여 허가를 내주시니 마다 할 수 없고 억지춘향 여성포수가 된

것입니다.

아마 남편은 그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계셨나 봐요. 그런데 선배 엽사님들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여

망설였다 즉시 실행하신 것 같았습니다.

1990년 11월 3일 출렵(出獵) 전날 남편은 사격연습을 해야 된다며 태능 사격장엘 데리고 가셨습니

다.

물론 그 동안 남편 총도 몇 번은 쏴 보았지만 제 총이라 생각하고 만지려니 무척 떨렸습니다.

총을 잡으려니 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손에 너무 땀이 나 준비해온 면장갑을 꼈는데도 장갑이 축

축히 젖어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트랩 사격장에서 “앞에 총”을하고 접시가 날아가는 것을 보려고 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데 첫 접시는 쏘지도 못하고 숨만 고르고 있었습니다.

다음 접시는 땅에 떨어진 다음에 "탕!"

세 번째부터는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여 제대로 쏠 수 있었습니다.

2박스(50발)를 다 쏘고 난 후 집에서 샤워를 하려고 보니 어깨와 겨드랑이가 온통 새까맣게 멍이 들

어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니 아프던지...

내일 경남으로 사냥을 떠난다는데 이 몸을 가지고는 도저히 갈 수 없어 못 가겠다고 하니 남편이 글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총포사에 예약도 했고 선배 엽사님들이 모두 기다리신다는 거예요.

결국 이튿날 경남 함양군으로 사냥을 갔습니다.

버스에 올라가니 여성포수가 탄생했다고 선배 원로 엽사님의 열렬한(?) 환영과 박수를 받으니 부끄럽

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다음날(무박 2일) 버스에서 내려 사냥하던 중 한 열시 반쯤 되었을까요?

남편이 꿩이 나간다고 소리치시는데... 제 정면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라 가는 장끼가 보였어요.

저도 모르게 순식간에 “탕!”.

아마 꿩 꼬리 뒤를 쏜 것 같았습니다.

“또 쏴! 쏴!”하시는데 그냥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었죠.

남편을 따라 다닐 때는 꿩이 그렇게 빠른 줄 몰랐는데 총을 들고 있으니까 왜 총알같이 빠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따라만 다니던 시절엔 제가 보기엔 상황이 아주 좋은 꿩을 남편이 놓쳤을 때 속마음으로 “무슨

 명포수란 사람이 그렇게 좋은 것도 못 잡는담?“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젠 이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남편이 오셔서 왜 한발 더 쏘지 그랬느냐고 하면서,

“처음이라 어쩔 수 없을 거야.”

“그래도 소질이 있어 보여. 남자들도 간혹 꿩! 꿩! 소리만 치고 겨냥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라고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어때? 조금도 어깨가 아픈 걸 몰랐지?”

어머, 진짜! 전혀 아픈 줄 몰랐습니다.

     정말 총을 들고 다니니 더 흥분도 되고 걸음이 빨라진 건 사실인데 아무리 가벼운 총이라도 저에

는 좀 무리한 하루였습니다.

남편은 꿩을 보고 쏘았다는 건 매우 소질이 있는 것이라는 말에 약간 피로가 가시는 듯 했어요.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너무 긴장되고 혹 오발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가득 찬 하루였

습니다.

남편 덕분에 여성들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하는 별난 운동도 하고 진짜 여성포수가 되었으니 전 참으

로 행복한 여자가 아닐까요?

“아! 나도 언제나 멋지게 장끼 한 마리를 떨어트려 보나?” ( 1990년 11월 4일 그 때 생각이었음.)

                                                      

2005년 8월 어느 날

                                                                                                     정 영 옥 씀

     ( 후기 ) 

남편의 끈질긴 권유로 남편이 25년간 써온 수렵일기를 토대로 회상하여 두서없이 썼습니다.

선, 후배 엽사님들! 부끄럽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