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포 박과 태능 사격장 선수들

1985년 1월 하순 전남에서 사냥할 때 이야기다.

밤 11시 반 버스에 오르고 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 확 들어왔다.

태능 사격장에서 사격 꿈나무들을 키우는 왕 코치가 점잖게 앉아 있는 거다.

그 동안 매년 태능 사격장을 여러 번 찾아 개 총성훈련(총소리에 놀라지 않게 하는 훈련)도 시키고

사격연습도 해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어? 왕코치님 아니십니까? 웬일로 이차를 다 타고 계십니까?" 땡포 박이 물었다.

말씀인즉, 선수들 근력(筋力)을 키우기 위해 수제자 2명을 데리고 나왔단다.

그러면서 "얘들 앞에서 일어나는 꿩은 다 죽지! 꿩만 많다면 아마 내일은 꿩 잔치가 될거요!"

이때 이 땡포 박이 거들었다.

"그렇지만 사격장에서 접시를 쏘는 것과 꿩을 잡는 것과는 매우 다른데요. 물론 사격장에서 연습하는

것이 많이 도움은 되지만 제 생각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뭘 모르시는 말씀! 그 빠른 접시도 백발백중인데 천천히 나는 꿩이 뭐 어렵겠오? 쐈다 하면 떨어지는

거지!"

버스에 탄 선배님들은 거의 다 사격장에서 총을 쏘아본 경험이 없으셔서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암! 총알같이 빨리 날아가는 타켓트(target)를 맞추는 선수들인데 틀림이 없을 거야! 틀림이 없고말고!"

하고 입들을 모으셨다.

이 땡포 박은 "아야!" 소리도 못 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만 스승이신 김건철 사장님만 내 의견과 일치되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해남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래도 왕코치와는 잘 아는 처지라 밥값을 내가 내려니 주위

분위기가 영 아니다.

나나 김건철 사장님이 잡은 꿩이 항상 모자라니까 꿩을 얻어서 선배님들께 드리려고 저렇게 신경을

쓰는구나, 참 젊은이가(땡포 박이) 기특하다는 이야기다.

기특하게 봐주시는 것은 좋은데 영 기분이 나질 않았다.

드디어 사냥터에 도착하니 전 주(週)에 회원 한 분이 거의 한 박스를 다 쏘고도 한 마리도 못 잡은

엽장(獵場)에서 왕 코치와 선수들은 먼저 내리고 나는 아내와 같이 작천면에서 내렸다.

여기서 우린 늘 꿩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어? 근데 오늘은 영~ 총이 안 맞는 거다.

오전에 7, 8마리를 만났는데 쏘는 쪽 쪽 헛방이다(사부님께 전수 받기 전이다).

긴장이 된다.

이렇게 하다간 왕 코치 일행에게 되게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에 휩 쌓였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데 애견 "케미"가 후미진 보리밭 바로 위에 있는 덤불에

다가 멋지게 포인(pointing)을 한다.

아내는 그 당시 총이 없었으므로 내 뒤에서 보고 있었다(아내는 1990년부터 사냥꾼이 되었음).

어쭈? 그런데 덤불에서 장선달이 화다닥! 튀어 나오더니 냅다 기다가 날아간다.

꿩이 기다 뜨는 것을 처음서부터 보았으니 이 얼마나 식은 죽 먹기인가?

너 요놈! 넌 이제 죽었다! 천천히 총을 들어 "탕!"

어라? 그냥 간다.

다시 재빨리 "탕~!!"

신나게 날아가는 장선달을 너무 속상하여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아내가 소리치며 꾸짖는 말씀 "어머머!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 좋은 걸 빼 먹으면 어떻게 해요!"

이 땡포 박은 너무도 황당하여 돌아서서 소태 씹은 얼굴로, "당신! 속으로는 에이! 이 바보, 등신아!" 했지?

"어머머! 생사람 잡네! 못 잡은 걸 나한테 화풀이 하는 것 좀 봐!"

"에이! 오늘은 꽝이다. 밥이나 먹자!" 둘이서 양지바른 데서 버너를 지폈다.

배낭에서 소주 반병이 좀 넘는 펫트병을 꺼내 아내와 반주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는 "아마 오늘은 오후에 다 잡으려나 봐요! 요 전번에는 오전에 장끼를 다섯 마리나 잡고 선 지고

다니느라고 죽도록 고생만하고 오후엔 지쳐서 한 마리도 못 잡은 적이 있었잖아요?"

"글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사냥에 들어가 산을 넘어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데 장송이 드문드문 있고 산

자락이 끝나는 곳, 밭둑 바로 위에 덤부사리가 보였다.

"어랍쇼?"

"케미"가 먼저 달려가더니 그 덤불에다 한쪽 발을 들고 포인을 하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완전 돌부

처다.

약간 벌려진 입이 달달달 떨리고 있다.

무지하게 긴장했나 보다.

시야가 탁 트이고 좀 높은 곳으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았다.

"들어가!" 안 들어간다.

나도 긴장한 나머지 앞에 총을 한 내 양손에 땀이 나는 것 같다.

다시 조금 내려가 발로 슬쩍 개를 미니까 "화다닥!" 쳐들어가는데도 안 난다.

아내가 돌을 던졌다.

개가 다시 덮쳤는데도 조용하다.

"뭐야? 이거! 너 헛 포인한 것 아냐?"

앞에 총을 한 걸 내리면서 주위를 살피려는데, "꽈드등! 꺼겅껑껑!!!"

묵치가 땅과 수평으로 난다.

재빨리 겨냥을 하여 "탕!"

어랍쇼! 날개는 못 맞추고 몸통에 정통으로 맞아 두 다리는 축 늘어져 덜렁 덜렁거리며 금방 떨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비틀비틀, 흔들흔들 흔들거리면서 제멋대로 날아간다.

이젠 떨어지겠지 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떨어질락 말락 하더니 어! 이런 젠장! 얕은 야산을 간신히 그냥

넘어가는 게 아닌가?

금방 떨어질 것 같아 쏘지 않았더니 또 아내의 힐책, "아니? 한 번 더 쏘지 뭐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이상한 것은 첫발에 좀 맞으면 다음 발이 잘 안 나가게 된다.

다시 쏜다 해도 좀 뜸들이다가 늦게 방아쇠를 당기게 되어 늘 헛방이 되는 것이다.

아내는 그걸 모르니 또 핀잔일수 밖에.....

할수없이 혹시나 하여 꿩이 넘어간 방향으로 사냥을 하면서 나아갔다.

그 야산을 넘어가니 큰 보리밭이 나왔다.

어? 그 밭 한가운데에 깨진 단지(조그만 항아리)가 얼핏 보였다.

다시 자세히 보았다.

“아니? 깨진 단지가 왜 보리밭 한가운데에 있지?”

해가 마주 비쳐 역광(逆光)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땡포 박, "여보! 밭에 단지 깨진 것이 있을 리 만무고 저거 혹시 아까 총에 맞은 그 장끼가 아닐까?"

"에이! 저게 어떻게 꿩으로 보여요? 깨진 항아리지!", 아내 말씀.

"이상하네!"

개를 데리고 밭으로 들어섰다.

20m 앞에 가던 개가 그 단지에다 척! 포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가보니, 오우 예! 아까 그 장선달(장끼)이 죽어있었다.

욘석이 죽어 가면서도 흰 목테는 꼬아 꺾어서 날개 속으로 뭍고 또 한쪽 날개를 쫙 펴서 둥글게 오므려 몸을 감싸고 긴 꼬리는 보리 싹 사이에 숨겼던 것이다.

우리 내외는 기가 막혔다.

죽으면서도 요렇게 찾을 수 없게 숨기는구나 하고 그 위장술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총이 잘 맞기 시작해 척척 백발백중이더니 6마리나 더 추가 했다.

아내 말씀, "그것 봐요! 내가 뭐랬수? 오후에 다 잡을 거라고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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