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에 잡힌 꿩 이야기

 

1972년 3월 마지막 일요일.

말은 1년간 수렵금지라고 발표는 되었지만 다음 엽기부터 기약 없는 금렵이 시작된다고 사냥꾼들은 다 넋이 나갔다.

이유는 너무 남획되어 야생동물이 씨가 말라 보호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청화대 경호실에서 박종규 실장이 주동이 되어 유신 개헌 후 박대통령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기한 없는 금렵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엽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 하나도 서슬 시퍼런 권력에 "아야!" 소리도 못하고 거부운동도 펼칠 수도 없었다.

집안에서 삼삼오오 엽사들 끼리 만 불평을 했지 정정당당하게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바야

흐로 수렵 암흑기가 시작되는 거였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비참하고 암담한 심정에서 마지막 사냥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3월 마지막 일요일이라 대흥총포 낚시회에서 반 이상은 낚시꾼, 열 서너 명은 사냥꾼으로 짬

뽕이 되어 충남 예산군 삽교로 출조(出釣), 출렵(出獵)하여 낚시꾼은 삽교 수로(水路)에다, 사냥꾼은

인근 야산에다 풀어 놓았다.

한 군데로 풀었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버님은 원래 몸이 불편하셔서 걸음이 늦으셨다.

걸음 빠른 선수들은 다 훑고 지나간 자리를 우리는 천천히 뒤져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3년차 애견 "케리(잉글리쉬 세타와 잉그리쉬 포인터의 1대 혼합 견)"를 믿기 때문에 서

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 개는 내가 훈련을 시켰는데 2년차에 포인, 운반, 선불 꿩(총에 맞아 날개가 부러진 꿩) 회수 등 못

하는 게 없었다.

다만 물에 안 들어가고 추위를 타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무엇보다도 포인 동작은 일품이었다.

꿩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포인하여(고개를 좌, 우로 돌려) 꿩이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고, 꿩이

길 때 자기도 따라 기는, 또 떼 꿩은 서서 포인하는 등 나하고의 의사소통은 정말로 끝내 주었다.

그 해, 마지막 해에는 186마리나 잡게 해주었던 명견이었다(거의 주말 사냥으로).

지금도 아쉽다.

개는 5, 6년일 때 최고의 절정기인데 그만 금렵으로 피지 못하고 봉오리로 시든 것이.....

 

남이 흘린 꿩을 포인하여 1마리를 잡게 해주었고, 하나는 남이 튀긴 꿩이 전속력으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사격장 솜씨로 리-드하여 잡아 당겨 쏘아 정확히 명중시키는 것을 보신 아버님

께서는 박수를 치시면서, "야! 기가 막힌 솜씨구나!"

이젠 대흥 총포가 아니라 어느 사냥꾼도 너를 따라 올 수 없겠다고 극구 칭찬을 하셨다.

또 꿩을 튀긴 사냥꾼들이 와서 자기네가 쏜 꿩이라 우기면서 달라고 하기에 내가 쏜 것이라 하니 믿

지를 않아 해명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하여튼 걸음 늦은 우리가 마지막 수렵에서 2마리 잡은 것은 대단한 엽과(獵果)라 하시면서 매우 기뻐

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참 선친과 양지에 앉아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등 세상 돌아가는 말씀을 나누며 쉬던 중 청둥오리

떼들이 200m앞 논에 내려앉는 것이 보였다.

 

"이제 꿩은 그만 잡고 저 오리나 잡아 와라! "케리"는 내가 붙들고 있을 테니까..."

혼자 살~살 몸을 구부리며 논뚝 밑으로 전진하여 70m쯤 남겨 놓았는데 별안간 오리가 다 나는 것이

다.

일어나 사방을 살펴보니 우리 개 "케리"가 날 찾으러 온 것이다.

"아니? 잘 붙잡고 계신다더니 어떻게 되신 거지?"

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개를 놓쳤다고 미안해하시며 그냥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시간도 있고 바닷가 쪽이나 훑어보자는 심사에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아! 그런데 우리 명견 "케리"가 바다 반대 쪽 낭떠러지에다 척! 포인(pointing)하고 있질 않는가?

내가 서있는 데서 한 30m 아래에 키가 50cm도 안 되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힘겹게 벼랑에 버티고

있었다.

거기에 꿩이 숨어 포인을 한 것 같았다.

아마 다른 개들은 다 그냥 지나친 것이리라.

천천히 "앞에 총"을 하면서, "케리! 들어가!"

"꽈드등!"

묵은 장끼 한 마리가 아래 작은 소나무에서 탈출하는 것이 보였다.

"너! 요놈! 넌 죽었다!"

엽총을 재빨리 견착(肩着) 하는데, "꽝!".

생전 처음 오발을 한 것이다.

이내 바로 정신 차리고 꿩이 올라오길 기다리는데 꿩이 안보여 급히 총구를 좌우, 상하로 겨누어 보

았으나 그래도 꿩이 보이 질 않는 것이다.

총을 내리고 골짜기 밑을 내려다보니, 어~랍쇼! 절벽 5~60m 아래서 꿩이 머리에 맞았는지 제 자리에

서 펄떡 펄떡 뛰는 게 보였다.

명견 "케리"는 길을 찾아 돌아 내려가고 있었고... 재수 되게 없는 꿩이다.

지금 이 순간만 넘기면 천수를 다 할 수 있을 터인데.....

 

"총소리가 나던데 뭘 쏜 거니?" 선친께서 물으셨다.

"뭐! 오발? 얘! 다치지 않았니?"

"그런데 그 오발에 꿩이 떨어졌지 뭐예요."

상황 설명을 해 드렸더니 박장대소를 하시다, "너는 운이 억세게 좋았는데 그 꿩은 아니구나!"

먼 산을 쳐다보시면서 쓸쓸한 표정으로 말씀을 흐리셨는데 이제 와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리 잡는다 해도 사냥꾼의 마음과 도리가 있다는 것을.....

 

(후기)

그 날 우리만 3마리 잡았지 다른 엽사들은 모조리 꽝을 쳤다.

아마도 우리 개 "케리"가 명견이었기 때문에 꿩을 만날 수 있었고 또 운도 무척 좋았지 않았나 싶다.

꿩을 만나는 것은 항상 행운이 따라야 되는 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