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예보에 비가 온다더니 날이 무척 흐렸다)

산청군청 환경 위생과에서 추포님께 신세를 진 일이 있어 좋은 엽장을 추천해 준다는 제의를 유보하고 있다가 땡포 박 선배가 왔으니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하였다.

오부면으로 안내를 받아 엽장을 살펴보니 그림이 무척 좋았다. 자고로 "그림이 너무 좋으면 빛 좋은 개살구지!"하고 생각하며 ‘폴’을 내리려고 잰걸음으로 몇 발작 내딛는데 오른발이 무엇에 걸렸는지 몸이 붕~ 뜨며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얼마나 아프던지 한동안 꼼짝 못했다.

엽총 끝은 두 구멍 다 흙으로 메워져있었다. 엽우(獵友)들은 발에 뭐가 걸려 넘어진지 모르고 다른 급작스런 충격으로 쓰러진 줄 알고 너무들 놀랬다. 아내 정포도 너무 놀랐단다.

천천히 일어나 앉아 살펴보니 바닥 콩크리트용 철망이 녹슬어 휘어진 채 잡초에 섞여 있어 보이질 않아 그것이 발에 걸렸던 것이다. 응급조치를 하고 꽂을대로 총구(銃口)를 뚫고 사냥을 시작하려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과연 한 마리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공연히 땡포 박만 부상당하고 기회만 놓친 꼴이 되었다.

다시 추포 님의 단골 엽장으로 옮기는데 비는 점점 더 오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꼬불꼬불 산으로 오르더니 7부 능선에 차를 댄다. 비가 점점 더 오기 시작해 빗방울이 굵어진다.

아내와 나는 우비로 갈아입었다. 우린 전천후 사냥꾼이라며 웃으면서...

그러나 김성주 님은 차에서 내리지 않으신다.

우리가 산 아래로 내려가면 틀림없이 돌아오는데 애를 먹을 것 같아 미리 차를 대주시려고 그런 것 같았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국포 님은 더 아래로 내려가고 추포 님은 우리와 함께 위서 아래로 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선배인 이 땡포 박과 정포에게 기회를 주려는 속셈이리라.

드디어 ‘폴’이 포인 하는 듯하더니 따라 간다.

20m쯤 추적해 갈 무렵, 드디어 "푸드등!!! 꺼겅껑껑껑!!!"뜨는 꿩이 보였다.

처음부터 뜨는 것을 보았으니 문제가 없을 터, "꽝!!!" 어~라? 휫~청 하더니 그냥 간다.

추포 님 말씀, "왜 한 발 더 쏘시지 그랬어요?"

땡포 박, "부끄럽습니다! 좀 맞게 되면 재차 잘 안 쏘게 돼요."

사실은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웬지 후배들과 공렵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 갈 때가 가끔 있다.

그러면 잘 리-드가 되질 않고 빨리 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잘 맞을 리가 있겠는가? 얼굴이 새 빨개졌다. 어깨가 축 처졌다.

영 체면이 아니다.

왕 땡포수로 오해 받는 게 두렵다. 비를 좀 더 맞은 후 사냥을 접었다.

비가 와서 사냥을 망쳐 어떻게 하느냐고 후배님들은 너무 애석해 했다.

더군다나 두 후배는 일이 바빠 오늘로 우리와 공렵을 끝내야 하니 더욱 안스러워 했다.

나, 땡포 박은 우리보고 체력을 안배하라고 비가 오는 것이니 괜찮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단성면에 있는 양지식당에다 꿩 샤브샤브를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또 아내 정포가 집에서 이들과 함께 하려고 쏘스(양념 간장)를 만들어 왔는데 그냥 간단다.

집에서 아내가 기다리고 밝을 때 떠나야 된다나? 아무리 잡아도 막무가네다.

너무도 아쉬운 작별을 했다.

후배들은 선배들께 죄송하다고, 우리는 너무도 고맙다고 하면서 서로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애써 잡은 꿩을 모두 다 주고 갔다. 우리 셋은 이틀 동안 겨우 세 마리 잡았을 뿐이었다.

푸짐하게 차린 꿩 샤브샤브와 소주로 배를 채우기는 했지만 추포와 국포를 아무 것도 대접을 못하고 보낸 것이 마음 아팠다. 아직 너무 이르기도 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래방으로 뒷풀이를 갔다.

아! 그런데 김성주님이 얼마나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시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끝내고 나오는데 추포님의 전화다.

"선배님! 내일 제가 안내를 다시 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바쁘신데 괜찮겠어요?"

"제 처와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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