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날

다음날 8시. 단성지구대에서 추포 내외를 만났다.

부인의 모습을 보니 예쁘고 가냘픈 것이 무척 착해 보인다.

마치 그 옛날 아내 정포를 보는 것 같았다.

더욱이 서로 같은 약사(藥師)라 더 정감(情感)이 가는 듯 둘은 바로 친해졌다.

이제 비는 금방 멎을 것 같이 아주 약하게 내린다. 안내한 엽장을 보니 꼭 꿩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안 맞는지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내려가다 내가 추포 님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빠트린 후미진 곳을 다시 더듬어 보는데 추포 님의 세타 ‘윌(Will)’과 포인터 ‘폴(Fall)’이 포인을 한다. 우리 ‘폴(Paul)’도 포인을 한다. 그런데 "윌"의 포인 모습이 너무 멋있다.

꼬리가 갈기를 세우고 하늘을 찌를 듯이 치켜 올라간 것이 전형적인 순종 잉글리쉬 세타 모습이다. 오랜만에 멋진 광경을 보았다. 우린 긴장하여 "들어가!!!".

그러나 없다. 어디로 기어갔는지, 미리 날랐는지 끝까지 추적을 못한다.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데 별안간 20m 앞에서 "꽈드등!!! 꺼겅껑껑!"하고 소리를 지르며 선달님이 나무를 타며 돌아간다.

이때 땡포 박은 총을 어깨에 올려놓고 가다가 재 빨리 풀어, 탕!". 나무 가지만 부러지고 선달님은 멀쩡하게 사라졌다. 햐! 어떻게 만난 꿩인데,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잡았어야 하는데 또 놓치다니? 창피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도 아까 포인을 했던 그 꿩인데 물을 타고 기었나 보다.

아쉬워 차를 세워 둔 곳 위를 더 더듬어 보다가 소득이 없어 나는 내려왔고 추포 님은 더 올라갔다. 잠시 뒤 추포 님은 고라니 한 마리를 잡아 놓고 왔단다. 원래는 고라니를 안 쏘는데 아는 분이 약을 한다고 부탁해서 억지로 잡았다나?

이 땡포 박은 옹고집 꿩꾼이라 서로 통하는 것 같았다. 빨리 처리를 해야 다음 엽장으로 옮기기 때문에 생전 처음 조수 노릇을 했다. 그러나 내가 네발 달린 사냥은 너무 촛자라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엔 차를 돌려 추포 님도 와 보지 못한 그럴싸한 곳으로 주차를 했다.

큰 산을 넘어 추포 님은 정상 쪽에서, 우리(김성주 님, 아내 정포, 추포님 부인 그리고 땡포 박)는 넘어서 아래로 내려가 밑으로 돌기로 작전을 짰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폴’이 아래 덤불에다 긴가, 민가 포인을 한다.

추포 님 개 ‘폴(Fall)’과 ‘윌(Will)’은 그냥 지나쳤다.

확실한 포인을 안 해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꽈드등!!! 꺼겅껑껑!!!"

왼쪽에서 오른 쪽 뒤로 빠진다. 급히 겨냥을 하면서 오른 발을 더 오른 쪽으로 옮기는데 찍~ 미끄러진다. 다시 겨냥하려니 옆에 아내 정포가 걸린다. 빨리 쏜다는 것이 꿩 뒤를 쏘았다.

다음 한 방은 아내가 걸려 쏠 엄두도 못 내었다. 아니, 경험이 풍부하다던 늙다리 포수가 얼마나 급하다고 미끄러지게끔 몸을 빨리 트는가 말이다. 천천히 해도 될 것을 참으로 한심했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추포 님이 "아니? 김 사장님은 왜 안 쏘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땡포 박은 속으로, "김 사장님은 이 땡포 박을 믿은 거죠!".

땡포 박 덕분에 김 사장님도 얼굴이 빨개 진 것 같았다.

산을 넘는데 왜 그리 힘이 드는지 숨이 턱에 찼다.

지그잭으로 걸어 올라가는데 계속 온 비에 흙은 미끄럽지, 입에는 단내가 나지, 얼굴과 몸엔 땀이 비 오듯 했다. 어젠 비에 옷이 젖더니 오늘은 땀으로 적신다.

그런데 추포 님은 휘적휘적 걸어 올라가는데 얼마나 빠른지 우리는 반도 못 올라갔는데 벌써 넘어갔다. 마라톤 풀 코스를 몇 번이나 완주했다더니 역시 다른가 보다.

겨우 넘어갔으나 꿩은 한 마리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밑으로 도는 것이 너무 멀게 느껴서인지 아내 정포는 다시 넘어 가잔다. 아래로 돌면 된다고 해도 추포님도 찾을 수가 없어 김 사장님도 넘어가자고 하신다.

얼마나 힘들게 넘어온 건데 또 넘어가자니 화가 나지만 나도 초행(初行)이라 자신이 없어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죽을 고생을 하고 넘어가 보니 아직 추포 님은 안 보인다.

조금 있더니 "탕!"하고 가까운 데서 총소리가 난다. 돌아온 추포님을 보니 양쪽에 또 안테나가 걸렸다.

"어? 잡으셨네? 축하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총소리는 방금 한방 밖에 못 들었는데?"

"네! 세 마리 잡았어요. 근데 어디 계셨어요? 내가 산 위에서 몰아 계속 떼꿩이 밑에서 나갔는데?"

아이구! 이런? 우린 망연자실 했다. 이때 땡포 박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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