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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엽사 김순기씨와 서부총포사(1983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 금렵(禁獵)동안 내내 낚시만 하다가 1982년 사냥금지가 풀린 뒤 일년이 지나 1983년 11월부터 다시사냥을 시작할 수가 있었다. 첫해에는 강원도였지만 이번엔 경상남도였다.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명총(名銃) 스페인제(製) 에이바 베롯타(?) 12ga. 28"(28 inch)로 쏘는데 그 옛 의 실력은 어디로 가고 한 마리도 못 잡는 거였다. 이 총은 개머리가 2cm 잘려 있어 영 조준이 안 되었다. 그래서 짧은 개머리에 맞추어 열심히 거총연 습(据銃練習: 총을 어깨에 대고 겨냥하는 연습)을 했는데도 나가 보면 실렵(實獵: 실제 사냥)에서는 그렇게 안 되어 항상 위로 쏘는 결과가 되니 잡을 수가 있나? 할 수 없이 이 명총을 영치(領置: 경찰서에 보관) 시키고 내가 금렵 전에 쏘던 벨기에 제(製) 부라우닝(Browning) 5연발을 출고(出庫)하여 처음으로 사냥을 나섰다. 그런데 이 부라우닝 5연발로 견착(肩着: 겨냥하려 어깨에 대는 동작)을 해 보니 눈에 척척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때에는 서부총포로 단체출렵(團體出獵)을 다녔었다. 세 번인가를 꽝을 쳤더니 서부총포의 박 사장이나 허 총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완전히 땡포로 치는 데 정말로 기분이 나빴으나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두세 번 사냥에 꿩을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으니까..... 엽장(獵場)이 경남 산청군인데 총도 못 쏘는 사냥꾼이라고 내가 원하는 엽장(獵場: 사냥터)에서는 내 리지 못하게 하고 아무 데나 땡포(총을 잘 못 쏘는 포수)들 대여섯 명을 한꺼번에 내려 주니 너무도 한심하여 짜증이 났지만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엽사(獵師: 사냥꾼)들이 너무 많이 참석해서 그런 것 같았다. 또 그 때엔 왠 그리 많은 사냥꾼들이 몰려드는지 항상 40명이 넘어 버스가 꽉 꽉 찼었다. 거기다가 개도 같이 실으니 어떻겠는가? 개가 오줌 싸고 실례를 하지 않나 아주 난장판 아니 개판이다. 더군다나 꿩도 못 잡는 주제에 아내까지 대동했으니 더 괄시를 받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여자는 반값만 받아 더 이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사냥을 하는데 여럿이 내렸으니 겨우 포인(pointing)이나 하는 "쫑"이라는 엉터 리 포인터(pointer)를 끄는 나로서는 도통 꿩을 만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산 위를 쳐다보니 사냥꾼 두어 명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개가 없었다. 옳다! 개가 없으니 도망 안간 꿩이 있겠다 싶어 부지런히 올라가 보았다. 어떤 서울 말씨를 쓰는 사냥꾼 말씀, "꿩이 6~7마리가 앉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안 보이네요! 우리 아이와 함께 30분을 샅샅이 두 졌는데...!" 내가, "개가 없으면 잘 날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러자 바로 우리 "쫑"이 포인을 했다. 나는 내심 꼭 잡아 망신을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꽤 긴장이 되었다. 같이 쏘면 좀 나을 것 같아, "여기 꿩이 숨어 있군요! 자! 쏠 준비를 하세요!" 그랬더니 그 엽사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너 미첬냐? 보이지도 않는 꿩이 어디 있다고 그래!"하 는 것 같았다. "쫑! 들어가!" "꽈드등!" "앗!~?"하며 그 사냥꾼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탕! 탕!" 떨어지는데 선불(하우찌: 날개만 부러진 꿩) 같다. 재빨리 뛰어갔다. 그런데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다 우리 "쫑"이 "포인!", "들어가!" "푸드득! 푸드득! 끽! 끽!" 드디어 한 마리를 잡았다. 그 사냥꾼 말씀, " 어! 나보다도 더 어리신 것 같은 데 사냥을 잘 하시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서울인데요! 서부총포 따라 왔어요!" "어! 나도 서부인데....!" 그렇게 해서 그 날 처음 사냥을 나온 김순기 엽사(땡포 박보다 4년 연상인 듯?)를 만났다. 같이 사냥하기로 하여 나를 따라 다녔다. "장끼는 이런 양지보다는 건너편 음지에 있지요!", 땡포 박 이야기. 정말 산구비를 돌아 음지에 가자마자 "쫑"이 또 포인을 한다. 앞에 총을 하려니 벌써 나간다. 재빨리 "탕!" 어? 선불이다. 개가 봤기 때문에 곧장 쫓아가니 장끼가 더 도망을 못 가고 땔감 나무 묶어놓은 곳으로 숨는다. 거기에다 또 포인! 앞에서 포인하니까 장끼가 뒤로 물러나니 긴 꽁지가 나무 밑으로 쑥 빠져 나왔다. "물어!" 이렇게 해 꿩 두 마리를 쉽게 잡으니 이 김순기엽사는 땡포 박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한 마릴 드리고 버스에 오르니 축하한다고 박 사장과 허 총무가 야단법석이다. 나는 좀 쑥스러웠다. 금렵 전에는 오전에 14마리나 잡은 적도 있었는데, 이게 영 아닌데 하고..... 그 때 경남은 꿩이 참 많았건만 사냥꾼들이 너무 나이가 많아서 또 10년 만에 금렵이 풀렸기 때문에 몇마리가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니까 축하의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다음 주, 김순기 엽사가 개를 데리고 나왔다. 얼핏 보기에 아이리쉬 세타(Irish setter) 튀기였다. 서울로 올라온 그 다음날 시장에서 사 온 것이다. 내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야 다음해에는 그 개를 포기하고 “죤"이란 영포(English pointer)를 구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분은 1년 반 동안 내가 노한성 선배님을 만날 때까지 항상 같이 엽행(獵行: 같이 사냥가기)을 했다. 꿩을 두 마리 잡은 다음부터는 제대로 된 엽장을 할애 받을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엽장을 고르는 솜씨를 보더니 아! 나이는 어리지만 꽤 실력이 있는 젊은이구나를 느꼈던 모 양이다. 이때부터 한 번 출렵(出獵)에 꼭 꿩 2~3 마리를 선배 엽사님 드리라고 내 놓으니 그 실력을 인정 받아 아무리 늦게 나와도 버스에서 좋은 좌석(座席) 두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또 좋은 자리를 앉기가 너무 미안해 선배님들께 양보해도 아내와 동행이라서 또 잡은 꿩을 제일 많이 내 놓는 후배가 대견해서인지 사양하셔 할수없이 앉곤 했다. 또 꿩을 얻어 간 선배님들은 다음 출렵때 꼭 소주와 안주를 선물로 주셨다. "박사장! 지난번 꿩 고마웠오! 이거 진로소주인데 지방에선 귀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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