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28일.

반나절 사냥이라 지난번 동생하고 가서 장선달 한 마리 잡은 의성군 사곡면 매곡리 벌판으로 갔다.

지난 2월 7일 장선생 한 마리는 앞으로, 한 마리는 뒤에서 두 마리가 날라 하나는 명중시켰으나 뒤에

서 멀리 빠지는 것은 선불 시켰는데 ‘폴’이 물어오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 곳이다.

그 이유는 ‘폴’이 떨어진 곳을 몰라 내가 ‘폴’을 이끌고 뛰어가는데 마침 그 앞에 까여사가 기어가는

것을 선불꿩으로 알고 따라 갔다가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 누가 한듯 한 마리도 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제 하였던 풍산읍 마애리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기 가면 볼 수가 있을 것 같아 서다.

막 단호리를 지나는데 늘 치고 싶었으나 동생 박원장이 반대하여 못한 곳이 있었다.

산 중턱에 절을 짓고 있는 곳인데 멀리 떨어져서 하면 될 것 같았고 또 동쪽으로 7~800m 떨어진 단

호리 방면에 마을이 있어서 코스도 짧아 어느 사냥꾼도 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절터에서 약 150m 떨어진 농로를 거슬러 올라가 주차시키고 박상무와 나만 내렸다.

절을 뒤로 하여 나가야 되는데 바람이 비우호적이다. 뒷바람이 부는 거다.

그래도 할 수 없이 앞으로 나갔다. 7~80m 앞에 덤불이 무성한 계곡이 있길 래 박상무 보곤 더 위로

 올라서서 전진하라고 했다.

계곡 속에서 틀림없이 꿩이 나올지 모르니 주의하라고 일렀다.

역시 ‘폴’이 먼저 가더니 멀리 포인을 한다.

내가 계곡 중간에, 박상무는 계곡 맨 위에 포진을 하고 있고 개가 아무리 쳐들어가는데도 도무지

날지 않는다. 계곡 건너편으로 기어가 날면 총을 쏠 수가 없기 때문에 박상무가 부지런히 계곡을 건

갔다. 건너편에서 소리를 지르며 왔다 갔다 해도 날지 않는다.

다시 ‘폴’이 계곡 위로 올라오니 틀림없이 처음 박상무가 서있던 곳에서 나를 것이라 예상을 하고 계

곡 윗 쪽으로 내달렸다. 그래도 안 난다.

"박상무! 장끼 같은 데 조심해!"

개가 다시 내려가길 래 나도 돌아서서 내려가는데, "꽈드등!!!!!"

어? 나는 소리는 들렸는데 꿩이 보이질 않는다.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눈앞에 있는 빽빽한 나무속에서 장선달님께서 그것도 묵치가 "꺼겅껑껑!"하며

번개같이 솟구쳐 나오는 게 아닌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는데 무지하게 빠르다.

재빨리 총을 들어 따라가며 "탕!" 삐끗, 또 "탕!". 그냥 간다.

허~어! 참! 이런 것도 빼먹다니?

위로 올라온 박상무,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빼먹더라도 천천히 쏘자고 그러시곤 왜 그리 빨리 쏘셨

요?"

얼마나 약이 올랐으면 자기 상관에게 핀잔까지 줄까?

나도 창피하고 속상해 침묵이 대답이다.

그런데 그 장선달이 100여m 날더니 산소 앞 덤불에 앉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혼쭐이 났으면 옆으로라도 산을 넘어가야 되는데 그 정도 날다 말고 앉다니?

아내 정포는 황급히 총을 둘러메고 차에서 튀어 나오더니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빨리 오세요! 빨리요! 꿩이 앉은 데를 알아요!"

박상무와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쫓아가면서도 "가 봐야 다시 나무속에서 날면 허사일

터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 정포는 이미 자리 확보하고 나보고 앉은 곳으로 가라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가시나무에 여러

번 찔리면서 겨우 힘들게 빠져나가 개를 불렀다.

‘폴’은 앉았다는 지점에 가기도 전에 그 위 산소를 한바퀴 돌더니 곧장 산 꼭대기로 재빨리 뛰어 올라

간다.

아내 정포는 몹시 흥분하여, "거기가 아니라 그 밑요! 제는 왜 산으로 올라 가냐?"

땡포 박, "아냐! 이미 기어 올라갔어! 꼭대기에서 날 텐데, 뭘!"

혹시 다른 꿩을 따라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덤불을 뒤져 보고 돌을 던져 봐도 헛일이다.

비퍼(beeper)소리가 안 들리는 것을 보니 또 산을 넘어갔나 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비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반쯤 더 내려온 것 같은 데 ‘폴’이 컹컹 짖는다.

"박상무! ‘폴’이 올무(덫의 일종)에 걸렸나 봐요! 올라가 봐요!"

어? 그런데 이상하다.

개가 움직이면서 짖는 것이 아닌가? 또 다른 꿩이 기고 있나?

그러나 여태까지 ‘폴’은 꿩을 따라가며 짖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산 위로 오르던 박상무, "와! 핫 핫 핫! ‘폴’이 그 꿩을 물었어요! 와! 우와! 잘한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날다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제풀에 앉은 것 같았는데.....

‘폴’이 선달을 물어오는 모습을 본 우리는 너무도 좋아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완전히 포기한 꿩을 물고 오다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는데도 꼭 꿈만 같다.

혹시 다른 꿩을 물고 온 것이 아닐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아마도 아까 짖은 것은 물고 내려오다 너무 힘들어 꿩을 턱 밑에 내려놓고 쉴

때 장끼가 도망을 가서 약이 올라 짖은 것 같았다.

나는 ‘폴’을 끌어안고 쓰다듬고 또 네가 어느 틈에 늘어 이렇게 잘 할 수가 있느냐고 아내도, 박상무

도, 최기사도 어루만져 주었다.

10시반 밖에 안 되었는데 박상무는 이젠 서울로 올라가잔다. 잡을 만큼 잡았음으로.....

그러나 1시간 반이 더 남아있어 ‘폴’을 더 훈련시킬 요량으로 어제 더듬던 곳을 다시 해 보기로 했다.

한 번은 산 위에 내려 몰아주는데 우리가 그만 떠들어 미리 나르는 까여사만 구경.

또 한 번은 어제 선불시켜 잡은 곳 못 미쳐서 몰아부쳐 주는 장선달을 내가 걸음이 늦어 축포만 쏘고

 끝났다.

이제 확실한 것은 꿩이 논이나 밭에서 먹다가 올라간 꿩을 반드시 몰아다 내 앞으로 보내 준다는 사

실과 꿩이 없으면 산 위로 올라가 라운딩, 수색하여 있기만 하면 내 앞으로 몰아다 준다는 사실을 아

내 정포, 박상무 우리 다 같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땡포 박은 개다운 개를, 기가 막히게 만족스러운 개를 만났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이렇게 대렵(大獵)으로 사냥을 마치니 우리 셋 아니 최기사까지 넷은 너무도 즐거웠다.

그리고 마지막 사냥은 항상 이틀을 하였는데 한 번도 재미를 못 본 적이 없다.

사냥꾼들이 거의 사냥을 접어 꿩이 다 내려왔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폴’이 별로 꿩을 많이 만나지도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조금만

더 경험을 쌓으면 명견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번 엽기(獵期)에는 무엇보다도 순창에서 공렵(共獵)한 김성주님, 이승연님 그리고 김종훈님

의 즐거운 만남 또 의성에서 도인환님, 서인창님, 이영욱님 그리고 이봉기님과의 행복한 시간은 이 땡

포 박과 아내 정포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더욱이 김성주님과 순창 공렵 때 조렵견(鳥獵犬)과 게임(꿩이나 고라니)은 서로 교감(交感)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고 이 땡포 박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더군다나 김성주님이 엽견을 부리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고 따라서 통제 위주의 훈련을 지양하여

엽견에게 맡기는 실렵(實獵)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폴’이 꿩을 몰아다 주는 것은 만약에

개가 멀리 나가지 못하도록 너무 통제를 하였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고 본다.

정말로 이번 엽기는 이 땡포 박에게는 사냥꾼으로서 거듭나는 한해였다.

비록 불질(총질)은 예전만 못하더라도 어떻게 사냥을 즐겨야 되는지 또 엽견은 어떻게 다루어야 되는

지 한 차원 더 높게 깨닫게 된 한해였으니 이 얼마나 큰 소득인가?

정말로, 정말로 이 땡포 박과 아내 정포는 행복하고 축복을 듬뿍 받은 한해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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