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의성, 안동 수렵을 마치며 (2007년 2월 27, 28일 맑음)

 

옛날 선친께서 사냥을 하시든, 낚시를 하시든 하루 하루가 가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그

서 항상 땅거미가 질 때까지 모시고 낚시도, 사냥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제 벌써 땡포 박도 그런 나이가 되어 매년 사냥철이 끝나는 게 그전보다는 훨씬 더 서운해지는 것

같다. 또 2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사냥꾼도 거의 없고 높은 산에 먹이도 다 떨어져 꿩들이 논과 밭이나

인근 야산으로 다 내려와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이번 시즌도 너무 아까워 또 꿩을 자주 만날 기대로

부풀어 27일 하루 종일, 28일 오전을 산에서 보냈다.

경찰서에다 총을 영치(嶺置) 시키는 일이 없었다면 아마 저녁 늦게까지 하였을 것이다.

 

첫날 27일.

집에서 새벽3시 출발하여 문래동 사무실에서 ‘폴’과 박상무를 태운 다음 의성에 도착하니 아침6시 4

분. 이번에도 지난 일요일과 똑 같은 풍산읍 마애리 코스를 공략하기로 하고 시작한 시간이 8시 20분

다. 최기사가 방향을 잘못 잡아 돌아가는 바람에 30분이나 늦었다.

지난 25일 우리 일행이 여기서 사냥을 했기 때문에 겨우 하루가 지나서인지 도통 꿩을 만날 수가 없

다. 이제 ‘폴’은 실력이 제법 많이 늘어 산 위로 올라가서 꿩을 몰아 내가 가는 곳으로 밀어붙여 준다.

또 전에는 꿩이 없으면 산으로 올라가 수색을 하다가 다시 올라간 곳으로 되돌아오더니 지난주부터는

내가 가는 방향으로 앞질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소위 명견대열에 들어가는 개도 보통 3년이 지나 4년차가 되어야 하는 행동을 겨우 만 두 살 밖에 안

되었는데도 하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 장끼를 몰아다 주어 잡게 만든 곳으로 가고 있는데 ‘폴’이 또 산으로 올라간다. 아래

논이나 밭에는 꿩 냄새가 안 나니까 라운딩(rounding)을 하는 것이리라 믿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6~70m 앞에 산에서 내려오는 ‘폴’이 보였다.

산이 막 끝나는 둔덕과 논 사이에 덤불이 있는데 그 곳에다 멀리 포인(pointing)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나는 부지런히 따라 붙었다.

쏘기 좋은 위치에 둘이서 준비를 하고 "들어가!"

그 소리에 놀란 장선달님이 글쎄, "꺼겅껑!" 하면서 왼쪽으로 나는 것이 아닌가?

나, 땡포 박은 천천히 들어 어깨에 대는 순간, 아내 정포는 벌써 "탕!". 그냥 간다.

나는 약간 더 따라가다 쏘는데 둘이서 똑같이, "탕~!"

어~라? 떨어지는데 선불(하우찌: 날개만 부로진 꿩)이다.

"자신있게 쏜 것 같은 데 선불이라니?" 라고 생각하며 ‘폴!’ ‘폴!’ 부르면서 죽어라 하고 쫓아가는데

도망가는 폼이 부상당한 것 같지 않게 무척 빠르다.

다시 재차 일격(一擊)을 가하는데 밭이랑에 맞았는지 장선달께서 몸을 움찔하더니 더 잽싸게 도랑으로 쏙 들어 간다.

아! 그런데 ‘폴’이 오더니 자기도 무척 흥분이 되었는지 한 번은 나를 쳐다보고, 한 번은 아내 정포를,

또 한 번은 박상무를 쳐다보는데 떨어진 꿩 냄새를 맡을 생각은 않고 마치 "야! 죽도록 고생해서 꿩을

밀어붙여 포인을 해 주었는데 너희들 셋은 뭘 했느냐?"고 힐난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 땡포 박은 약도 오르고 신경질이 나서, "야! ‘폴’! 이 바보야! 여기야! 여기!" 소리치며 발로 꿩이

숨어 들어간 도랑을 쾅쾅 굴렀다. 그 때서야 알아차렸는지 작게 원을 그리더니 총알같이 그 험한 산을

올라가는데 마치 전광석화같이 빠르다.

너무 늦어 물어 오기는 힘들 것 같고 괜히 내가 바보같이 잘못 쏘고 개만 나무라는 것 같아 내심 부

끄럽고 창피했다. 이 나이에 제 잘못은 모르고 잘하고 있는 ‘폴’에게 화만 내고 있으니 너무도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비퍼(beeper)소리를 들어보니 산을 넘어갔다. 한 참만에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점점 더 가까이 들리는 듯하더니, 아내 정포가 흥분하여 소리친다.

"여보! ‘폴’이 물었어요! 어마! 어마! 참 잘한다. 떨어진지도 오래 됐는데 어떻게 물어 왔니?"

어떻게 ‘폴’이 예쁘지 않을 수가 있나?

끌어안고 쓰다듬고 오징어도 먹이고 야단법석인데 박상무 말씀, "사장님! 이건 사모님이 잡으신 거예요!

제가 다 봤어요! 사장님 총알은 다 비껴 나가던데요, 뭘!"

우리 모두가, "하! 하! 하! 오늘 공치는 것은 면했군!"

 

산을 두 개 더 넘어 지난번에도 두 마리나 나간 계곡으로 들어가는데 또 포인이다.

이 계곡은 좀 넓어 서로 자리를 잡기가 매우 어려워 내가 위치를 지시하는 동안 눈치챈 장선달이 먼저

나간다. 매우 약은 녀석이다. 살 놈이다.

다시 나는 계곡을 가로질러 남향 녘 건너편 좁고 키 큰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꿩은 분명이 있는데 ‘폴’이 포인하고 또 쫓고 하는데 뱅뱅 돈다.

이 때 땡포 박이 뒤로 돌면서 대각선으로 나가니, "푸드등!.

아내 정포, "탕! 탕!" 땡포 박, "빵!" 둘이 다 축포만 쐈죠.

허무하게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서로 "당신은 뭐 했어?"하는 표정으로.....

꿩이 떨어진 줄 알고 산 아래 내려가 라운딩을 하고있는 ‘폴’을 올라오라고 불렀다.

갈대숲 밑 오른쪽 옆에 20m 정도 넝쿨이 우거진 곳을 수색하기 위해서다.

아내 정포는 여지껏 총도 쏘고 개가 왔다갔다 설치고 다녔는데 뭐가 있겠느냐고 또 올라가기 어려운데

‘폴’만 혹사시킨다고 목청이 높다.

웬걸? ‘폴’이 덤불을 가로질러 오르다 말고 포인이다.

"‘폴’! 들어가!"하며 덤불을 걷어차니 장선달 묵치가 "꽈드등!!!" 너무 놀랐는지 "꺼겅!껑!껑!"하며 난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일직선으로 힘차게 정면으로 나간다.

이때 땡포 박 천천히 견착(肩着)하여 조준하는데, 아내 정포, "탕!", 박상무 탕!" 맨 마지막으로 내가 "빵

!!"

획~! 밀려 나가떨어진다.

박상무 말씀, "하!하!하! 요건 사장님이 잡으신 거네요!"

 

점심 후에 구담리 우리 단골 엽장으로 갔다. 꼭 꿩이 뜨는 곳을 아는지라 서로 작전을 짜고 들어가

데 다른 엽사(獵師) 두 명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연 실색!

좀 돌다가 앞지른다면 예의상 안 되기 때문에 포기하고 지난번 아내와 내가 장선달을 세 마리나 잡은

곳인, 구담리 엽장 산너머 갈대가 무성한 냇가로 가기로 결정하여 도착하니, 다행히 바람이 우리 편이다.

이번엔 산쪽 집 근처에서 내려 집을 뒤로 하고 갈대가 있는 곳으로 가면서 박상무는 맨위, 나는 갈대밭

위, 아내 정포는 아래 논으로 포진하여 나갔다.

한 150m 쯤 가려니 갈대가 드문드문 있는 덤불에다 "폴"이 포인을 한다. 멀리 포인을 하는 것을 보니

덤불 끝에 숨어 있는 듯 하다. 아내 정포가 부지런히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