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기엽사와 함께 (2007년 1월 3일 水 흐리다)

1월 1일 머슴아 도인환님이 쪽지를 보냈다.

1월3일에 고령에 사시는 이봉기님과 공렵(共獵)을 계획하고 있는데 땡포 박은 어떠냐고.....

새로운 사냥친구를 만나게 해주신 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나?

더욱이 의성 사냥터를 훤히 잘 알고 계시는 이봉기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데 이런 즐거운 만남이

어디 또 있을까?

우리 쪽에 아내와 동생이 있어도 괜찮으냐고 물었는데도 쾌히 승낙이다.

호걸풍의 도인환님도 또 한 번 더 만나고 싶어 은근히 기다려졌다.

내심 나도 좀 잡아서 지난 수렵 첫날 신세진 것을 갚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환한 웃음으로 따듯하게 맞이해 주는 도인환님이 역시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봉기님이 도착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키는 아담하고 꼭 얌전하면서도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사곡면 쪽으로 달렸다.

배려를 해준 도 후배님은 바쁜 일이 있어 헤어져야 했다.

꿩이 둑방 근처로 내려 왔을 터이니 산 쪽으로 올라가지 말고 냇가 쪽으로 하란다.

자기는 더 위쪽으로 갔다.

지형을 살펴보니 긴 포플라 같이 높은 나무들이 빽빽히 찬 잔풀 지대에다가 또 그 너머 냇가가

있어서 너무 맘에 들었다.

동생 박원장은 전날 배탈이나 힘들다고 하여 아내 정포와 둘이서.

아내 정포는 집 뒤로 돌아 내 쪽으로 오고 있는데 ‘폴’은 아내 쪽으로 갔는지 안 보인다.

‘폴’ 위치를 확인하기위해 비퍼(beeper:추적기)를 키려고 총을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조작하는

순간, "꽈드등!!!"

제방 위 30m 앞에서 날아 산으로 가는 시뻘건 장끼가 보였다.

다급해진 땡포 박, 재빨리 겨냥을 하려니 어찌나 빠른지 벌서 40m이상 나간 것 같아 머리 위쪽으

로 겨냥을 해 한방을 쏘았으나 재차 쏠 기회가 없었다.

너무 거리가 멀어져 허망하게 힘없이 총을 내리고보니 또 축포를 쏜 것이다.

얼마나 빠른지 두발을 쏠 틈을 주지 않는 드물게 빠른 장선달이다.

정말 힘들게 그것도 모처럼 만난 선달님인데.....

이어 쫓아온 아내는, "어디서 날랐어요?" 너무 아쉽다는 눈치다.

"왜 한 발 밖에 안 쐈어요?"

"너무 거리가 멀어서...

"너무 늦게 쏜 것 아녜요?"

못 잡은 것도 분한데 아내에게 책망까지 듣는 것 같아 좀 부끄러웠다.

"아냐! 좀 더 위를 쐈어야 하는가 봐!"

입 다물고 이를 꽉 물고 속상함과 창피함을 달랬다.

이윽고 이봉기님이 도착,

"총소리가 나던데요?"

"못 잡았습니다! 이젠 나이가 먹어서인가..." 말끝을 흐릴 수밖에.....

그 후 몇 번을 친절하고 정성 어린 안내를 받았음에도 도대체 꿩이 어디로 꼭꼭 숨었는지 만날

수가 없었다.

다시 이봉기님이 입을 꽉 다물고 자기 차에서 내려오더니 매우 미안한 기색으로 이번엔 꼭 꿩이

있는 한 군데를 털어 보잔다.

우리는 즐기는 사냥을 하고 있으니 꿩을 만나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고 조심스러운 말을 해도 아주 결

연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너무 안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나에게 앞으로 공렵을 하지 않는 게 좋겠

다고 귓속말을 하는 것이다.

꿩을 만나지 못하면 안내해준 분은 스트레스를 먹게 되고 우린 너무 미안해 불안해진다는 것이리라.

맞는 말이다.

이번엔 농장에 자물쇠가 채워져 일반 엽사(獵士)는 들어가지 못하는데 자기가 아는 농장이라 괜찮고

꼭 꿩이 있는 곳이란다.

사곡면을 지나 춘산면으로 향했다.

과연 도착하고 보니 차가 못 들어가게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 잠겨져있었다.

우리 보고는 세분이니 왼쪽 깊은 골짜기를, 자기는 오른쪽을 치려는데 마음대로 하란다.

확실한 곳을 해보았어도 여지까지 제대로 꿩을 못 만나 불안한 눈치 같았다.

이봉기님 말씀대로 왼쪽 골을 택했다.

차 두 대는 위로 올라가고 우린 삽탄(揷彈)하면서 막 엽장(獵場)에 들어서는데 ‘폴’이 왼쪽 큰 가시덤

불 근처를 한 바퀴 휙~ 돌더니 멀리 포인을 한다.

동생 개 ‘쎈(아메리칸 부리타니, 대형)’은 그냥 왔다 갔다 놀고만 있었다.

어쭈? ‘폴’ 고개가 점점 밑으로 숙여진다.

아? 꿩이 끝으로 나가 날려다 말고 개가 한 바퀴 도니까 다시 덤불 속으로 파고들지 않았나 하는

예감이다.

"‘폴’! 들어가! 들어가!!"

돌 같이 굳어 있다. 부들부들 떤다. 눈은 살기가 뻗치고.....

왼쪽에 나, 동생, 아내 순으로 일직선으로 앞에 총을 하고 서있었다.

"틀림없이 나갈 테니 조심들 해!", 다시 "들어가!!!"

안 들어간다. 너무 가까이 있는 모양이다.

할수없이 주먹만한 돌을 ‘폴’ 3m 앞에다 던졌다.

흥분한 ‘폴’이 뛰어 들어가는데도 날지 않자 재차 또 공격한다.

"꽈드등!!! 꺼겅껑껑!!!!" 지면과 수평으로 나가는데, 탕!탕! 탕! 탕!" 네발이 불을 뿜었다.

동생 두발, 나 한발, 아내 한발이다.

명중! 장끼가 획~ 밀려 나가떨어지는데 꼼짝도 못한다.

"‘폴’! 물어와!"

어디에 떨어졌는지 못 본 눈치다.

나를 쳐다 보길래 꿩이 떨어져 있는 곳으로 돌을 던지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콱! 콱! 완전히 죽인 후 나에게로 가져온다.

"‘폴’! 기다려! 앉아! 놔!"하니 척 놓고 나를 쳐다본다.

포상으로 육포를 먹였다.

아내 정포는 "어마! 이젠 안 흔드네!" 지난주에 나한테 가져와서는 주기가 싫어선지 물고 흔들어

대던 것이 안 그렇다는 뜻이다.

"몰랐지? 요 몇일 동안 내가 흔들지 않도록 얼마나 공을 들여 훈련을 시켰는지 알아요?"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시켜도 말을 안 듣는 녀석도 많은데 젠 참 착하고 영리하다!"

누구 총에 맞았는지 우린 다 안다.

그러나 동생 박원장은,

"형님! 저나 형님은 오늘 땡폽니다. 형수님이 맞혔는데 우린 뭘 한 겁니까? 형수님 축하해요!"

"어머! 난 아닌데, 내가 제일 늦게 쐈어요!"

"아녜요! 늦게 쏘신 형수님께서 잡으신 거예요!"

아내 정포는 얼굴이 발가스름 해졌다.

또 동생 박원장,

"야! 그놈(‘폴’) 참 기가 막히네! 그 코가! 난 돈도 없으니 저렇게 좋은 개도 사지 못하고....."

땡포 박, "돈이 없는 거야? 아까워서가 아니고?"

이렇게 해서 우리 셋이 겨우 장끼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지만 즐거운 엽행(獵行)이었다.

만일 우리가 이 녀석마저 그냥 보냈다면 이봉기님 마음이 어땠을까?

참으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생전 처음 만난 우리를 마치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절친한 선배를 대하듯 정성껏 안내를 해

주고 성의를 다해 온갖 배려를 해준 이봉기님께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이봉기님! 우린 님의 엽정(獵情)이 가득 넘치는 지극한 환대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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