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둘쨋 날 : 어담리 입구

 

어제 좀 일찍 끝냈지만 땅이 너무 질어 고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내 정포나 나는 발이 가벼웠다.

아마 우린 하늘로 날라 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3마리만 하자고 정포에게 말을 건네니 생끗 웃는다.

당신 한 마리, 나 두 마리! OK?

부지런히 갈대 숲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는데 드디어 "폴"이 포인.

어? 어제하고 다르다. 앞발을 납작 구부리고 멋지게 포인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들어가!"

"폴"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한 바퀴 크게 라운딩을 한다. 없다.

다시 위 묵밭으로 돌진한다.

다시 또 그 위 묵밭으로...

이런? 한 70m앞에서 까양(까투리) 둘이 난다.

이내 또 한 마리가 뜬다.

그 외에는 하나도 구경할 수가 없어 어제 하던 구담리쪽으로 방향을 돌리니 10시다.

어제 만났던 곳은 하나도 없다.

더 치고 올라가니 아늑한 나무숲이 보였다.

"폴"이 그 숲 입구에 서서 멀리 포인을 한다.

아내 정포는 "폴"뒤에 따라 붙었고 나는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더 전진하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아내 정포가 따라붙으니 "폴"은 조금 더 앞으로 나가 정식으로 포인.

나무속에서는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 더 전진하라고 싸인을 보내니 이내 아내 정포는 더 나아

갔다.

서 너 발자국 더 나가니 "푸드등!" 까여사였다.

벌써 12시 30분이 넘었다.

아내는 배도 고프고 사냥을 일찍 마치려면 그냥 나가자고 하여 나오다 보니

또 "폴"이 뚝방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포인!

"야! 그냥 가자!" 절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오히려 더 굳어 있다.

둑방을 오르려니 너무 높고 지치기도 하여 아내가 돌을 던지니 "꽈드등! 꺼겅껑껑!"

내가 한발, "꽝!" 또 축포만 쐈죠, 뭐!

빨리 나가자고 한 아내는 미안한 듯, "어머! 이젠 폴을 꼭 믿어야겠어요. 정말 아깝다!"

 

늦은 점심을 먹고 아껴 두었던 용각리로 갔다.

여기만 가면 장선달을 꼭 한 마리는 잡았으니까 이젠 세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로 수정.

꿩이 많은 덤불로 들어가니 어제 누가 한 듯 새 발자국이 어지럽다.

항상 장선달이 숨어 있던 그 넓은 덤불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길 래 늘 꿩을 만나던 곳으로 이동하

니 "폴"은 아래 계곡으로 간다.

나는 계곡에서 올라오는 지점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꿩이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어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 "꿩! 꿩~! 여보! 꿩!"

얼핏 뒤를 돌아다보니 내 머리 위 한 4~50m 쯤 상공에 장끼가 전속력으로 날아 산꼭대기로 가는 게

보였다.

급하게 얼추 대고 따라가다 확 당겨 쏘니 왼쪽날개에 맞은 듯, 그냥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급하게 폴을 불렀다.

"폴! 폴! 폴!"

3초도 안되어 "폴"이 들이닥쳐 화급히 떨어진 지점으로 뛰었다.

"폴"은 한 바퀴 돌면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전속력으로 산 위로 뛰어 올라갔다.

힐끗 쳐다보는 눈빛이 얼마나 이글거리던지 오래 전 명견 "루키"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겨우 운반을 마스터 했는데 아무리 코는 내가 알아줄 정도로 예민하지만 경험도 없는

네가 물어올 수가 있겠느냐? 하고 생각하면서 혹 다른 꿩을 따라 갈 수도? 주변을 살폈으나 허사였다.

비퍼(beeper)를 켰더니 점점 멀리 산을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슬 슬 밭으로 내려갔다.

이제 "폴"의 비퍼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어 앞으로 나간 아내 정포수의 급한 목소리,

"여보! 여보! "폴"이 꿩을 물었나 봐요! 입에 뭘 물고 있는 힘을 다 해 뛰어오고 있어요!"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럴 수가?

와! 그러나 그건 정말이었다.

"폴"이 산 채로 물고 온 꿩을 내 앞 10m 앞에서 콱콱 물어 죽이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네가 결국 해냈구나!

내 혹독한 훈련을 몸을 사리지도 않고 열심히 하더니 물론 꿩한테 두 번이나 혼나서 그랬었겠지만 운

반을 마스터하자마자 선불 꿩 처리를 이렇게 능숙하게 하다니.....

혹시나 하여 디카(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보았다.

역시나 먹통.

내 자신의 실수로 이런 멋진 "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

 

오! 하늘이시여! 고맙습니다.

이런 훌륭한 엽견을 저에게 내려 주시다니요?

그 동안 4~5년을 엽견(獵犬: 사냥개) 때문에 얼마나 많은 stress를 먹었는데 이젠 아닙니다.

 

아내 정포수한테도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만약에 오늘 사냥을 아내가 No 했으면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인데 너무도 고맙다고 했다.

아내 정포수의 말씀, "당신은 원래 명견(名犬) 복은 있잖아요. 이젠 그만 벌린 입 다무세요.

째지겠어요. 폴 자랑도 그만 하시고. 남들이 들으면 무척 샘을 낼 텐데....."

 

아내는 "폴"이 처음으로 잡아 온 선불 꿩을 식구들끼리 기념으로 해 먹자고 한다.

아내의 "꿩 샤브샤브" 솜씨는 일품이니까 무조건 Yes다.

와! 또 "폴" 덕분에 우리 애들이 꿩 샤브샤브도 먹게 되었구나!

"폴! 폴!" 너무도 너무나도 고맙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