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수렵일기

 

남편은 사냥, 낚시, 골프 순으로 좋아 하는데 저는 그렇지가 않죠.

저는 골프, 사냥, 낚시 순으로 좋아 한답니다.

남편은 사냥을 거의 병적으로 좋아 하는데, 제가 골프를 더 좋아 한다고 하면 매우 섭섭해 하시죠.

사실 저는 걷는 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사냥을 꽤 좋아는 합니다.

하지만 살생(殺生)하는 것이 싫어서 골프라고 말을 한답니다.

제가 총을 쏴서 명중시킬 때는 무척 통쾌하죠.

그런데 떨어져 금방 죽지 않고 펄떡일 때는 너무 불쌍하여 눈길을 돌리게 되거든요.

이 죽이는 것 때문에 골프가 더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도 남편이 사냥을 너무 너무 좋아 하기 때문에 꼭 따라 다닌 답니다.

무슨 열녀냐 구요?

“호! 호! 호!”

 

지난 2004년 11월 2일 첫날 영광군에서 사냥할 때 이야기입니다.

염산면에서 군남면으로 가자면 큰 지방도로 왼쪽에 깊은 골짜기가 2개가 있어요.

주중이라 박 상무와 시동생은 오지 못하고 저와 남편이 한 조 그리고 노, 유 사장님이 다른

조를 짜서 사냥을 했답니다.

남편과 저는 첫 골짜기로 들어섰는데 제가 봐도 아주 꿩이 많게 생긴 지형으로 보여 기대가 컸죠.

그러나 어제 누가 사냥을 했는지 한 마리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실망을 하고 있는데 골짜기 맨 속 끝에서 우리 개 "리키"가 빤빤한 맨 보리밭에다 포인

(pointing)을 하는 거예요.

"여보! 포인 했어요!"

남편이 가까이 다가올 무렵, 보리밭 앞 덤불에서 장끼 두 마리가 동시에 일어나 좌우로 흩어져 나니

왼쪽은 남편이 쏠 거니까 저는 오른쪽 꿩을 쐈죠.

"탕! 탕!"

어머나! 두 마리가 다 떨어진 거예요.

남편은 재빨리 개를 불러 먼저 제가 쏜 꿩을 가져 오게 한 다음, 자기가 쏜 꿩을 물어 오게 하는

것을 보고, "아! 내가 잡은 꿩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러시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더욱 남편이

믿음직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요.

기분도 너무 좋았고요.

 

다시 차를 타고 나와 10분 쯤 군남면 쪽으로 가서 다음 골짜기에 내려 보니 여긴 아까 골 보다 훨씬

더 좋은 엽장(獵場) 같이 보였습니다.

계속 "리키"가 포인 하는데 6~70m 앞에서 미리 나는 것이 전혀 초가을 꿩 같지 않더군요.

드디어 "리키"가 논 뚝 위 자그마한 덤불에다 정식으로 포인, 남편이 "들어가!", 또 제가 "들어가!"해도

꼼짝도 안 하는 거예요.

아마도 꿩이 매우 가까이 숨어 있는 것 같았어요.

남편 지시에 따라 제가 더 높은 논 뚝 위로 올라서고 남편은 개 뒤에 서서 "리키"가 들어가지 않자

개를 발로 슬며시 미시더군요.

개가 튀어 들어가도 꿩은 날지 않으니까 개가 숲 좌우로 돌면서 라운딩(rounding)을 하는데 덤불

뒷 쪽에서 장끼가 "퍼드득! 꺼거겅!".

겨냥할 새가 있나요?

"따~ 당 !" 둘이서 쏘았는데 제가 조금 먼저 쏜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잡았죠?"

"아니, 당신이야!"

남편 말씀이 "내가 꿩을 따라가며 막 방아쇠를 당기는 찰나에 당신이 쏜 총에 떨어졌지! 막 떨어지려고

할 찰나에 내가 쏘았어. 어~ 이제는 정 포도 알아주어야 되겠군. 축하해요! 여보!"

저는 긴가민가했죠.

가끔 둘이 동시에 같이 쏘아 총소리가 한방으로 들렸을 때는 항상 양보하는 남편이기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참! 하루에 두 마리를 그것도 오전에 잡다니.....

얼마나 신나던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한답니다.

그 후 오후엔 더 잡질 못했죠.

오후에 남편이 한 마리 더 보태 오늘은 부부 합작 4마리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두 마리 잡으면 남편이 다섯 마리 이상을 더 잡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오늘은 남편 코를 좀 납작하게 만든 날이죠.

그런데도 남편은 제가 두 마리나 잡은 것이 뭐 그리 좋은지 하루 종일 싱글 벙글 하시니.....

"여보! 당신 입 찢어지겠어요! 뭐가 그렇게 신나고 좋아요?"

"그럼, 시즌 첫날 두 마리가 어디 쉽소? 잡기만 해요. 내 입 찢어지는 거 상관 말고....."

 

행복이요?

바로 이게 행복이지 않을까요?

우린 사냥을 통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협조하며, 서로 칭찬하고, 축하해 주는 것이 몸에 밴 것 같

습니다.

저는 항상 사냥이든, 골프든, 낚시든 간에 남편이 가자고 했을 때 한 번도 "No!" 한 적이 없거든요.

또 남편도 이런 저를 마음속 깊이 고맙게 여기고 늘 자랑을 하신답니다.

저도 이런 남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우린 늘 이렇게 다정한 연인처럼, 친구처럼 살려고 노력한답니다.

 

                                                              2004년 11월 2일 전남 영광군 군남면에서

                                                                                                      정영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