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포 박이 초년병을 벗어난 이야기

피하고 수렵 4년차 일 때(1971년인 듯?)의 이야기다.

우리 개 "케리(암컷: 숫 세타와 암 영포와 1대 잡종: 2살)"를 작년 1개월 동안 훈련 시켜 코 만 뚫어

준(꿩 냄새를 알게 훈련시킨), 경기도 여주군 이포에 사는 조 포수가 선친한테 신세를 졌다고 사냥을

초청했다.

밭에 땅콩을 많이 심었더니 꿩이 아주 많다고..... 꿩이 많다는데 가지 않을 사냥꾼이 어디 있나?

일요일 새벽 통금 해제사이렌이 울리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 때에는 밤 12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

선친께서 조 포수에게 "우리 큰 아이하고 공렵(共獵)하여 한 수 좀 가르쳐 주시오!"라는 말씀을 귓등

으로 듣고 나는 조포수와 함께 "케리"를 데리고, 선친께서는 "로미(동생 개)"를 데리고 아래 밭쪽으로,

우린 묵밭(경작하다 버려진 밭)이 있는 산 쪽으로 따로따로 사냥을 했다.

막상 나서고 보니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워커힐" 사격장에서 배운 솜씨를 한 번 발휘해 보자.

"케리"가 수사를 하는데 내 옆 우측 방향 15m 앞에 있는 조포수 쪽에서 커다란 장끼가 날았다.

조 포수 총은 유궤두 총열 30" 수평 쌍대(full choke)이므로 빨리 쏠 수는 없었다(총열이 길수록 산탄

이 퍼지지 않아 늦게 쏴야 함).

나는 부라우닝 5연발 평통(modified) 총열 28"를 가지고 사격장에서 쏘는 식으로 재빨리 쏘니 한방에

"털 퍼덕!" 명중.

"야! 미스터 박! 자네 어디서 배웠어? 기막히게 빨리 쏘는데!"

조 포수는 전에 나하고 여러 번 공렵(共獵)을 해 봐서 아직 초보 티를 못 벗은 땡포인 줄로 아는데 뜻

밖이란 말이리라.

그 때만해도 사격장에서 연습을 한 사냥꾼은 거의 없었고, 빨리 쏘면 무조건 안 되는 것으로 알았다.

또 사격장이 있는 줄도 잘 몰랐고 비용이 많이 들어 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음엔 꿩이 조 포수 앞에서 날라 왼쪽 내가 있는 쪽으로 전광석화같이 도는데 조포수가 먼저 "탕!".

이 꿩이 나를 보고 다시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휘니 또 "탕!". 헛발.

나는 스키트 사격장에서 터득한대로 꿩을 따라 가며 끌어 쏘니 정확히 명중.

조 포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내가 알기로는 직업 포수들은 대개 꿩이 마음껏 날라 다 방향이 정해진 다음(직업 포수들 말은 꿩이

똥을 싼 다음) 5~60m에서 쏘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날 꿩은 전부 포인을 받지 않고 미리 나는 것이다.

따라서 속사를 해야 명중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엔 내 앞에서 나는데 조포수도 화가 났는지 질세라 먼저 "탕!".

그러나 그 총은 30" full choke(총구가 작다는 말: 멀리 가서 퍼짐: 돼지나 노루를 사냥하는데

적격)인데 맞을 수가 있나?

내가 "탕!"하니, 또 명중.

이렇게 해서 1시간 반 동안 4마리를 먼저 잡으니 조 포수는 완전히 소태 먹은 얼굴이 되었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완전히 넉 다운(knock down) 시킨 꼴이 되어 버렸다.

어! 그런데 아래쪽에서 사냥하시던 선친께서 안 보이는 것이다.

"아버님! 아~버~님~!" 소리를 쳐도 응답이 없으신 거다.

뒤돌아 한참 뛰어가 보니 쓰러져 계셨다.

"너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데 왜 이제야 오니?"

무척 아프신 듯 괴로워 하셨다.

"언덕 아래에 계시기 때문에 제가 못 들었나 봐요. 많이 다치셨어요?"

가파른 언덕에서 2번이나 구르셔 정강이뼈가 보일 정도로 파여 피가 많이 흘러 내리셨다.

다행히 아내가 약사라 응급조치 약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붕대가 있나?

응급조치를 해 드리고 급한 대로 옷을 벗어 런-닝 샤쓰를 북북 찢어 지혈을 해 드렸다.

또 상처가 덧나지 않으시도록 테라마이신(항생제)도 잡수시게 해 드렸다.

병원에 가시자고 해도 막무가내셨다.

선친께서는 비록 한의사셨지만 6.25동란, 1.4후퇴 피난시절 면 공의도 하셔서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셨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시고 나시더니 "웬 총을 그렇게 많이 쏘았느냐?"고 물으시다 내 배낭을 보시더니 깜짝 놀

시면서, "야, 그게 다 꿩이냐? 몇 마리나 잡았느냐?"

아프신 것은 다 잊으셨나 보다.

금방 환하신 얼굴로 "네가 다 잡은 거냐? 나는 내려 갈 터이니 너는 사냥 더 해라!"

사냥이요? 더 할 수 있나요?

선친을 부축하여 차로 모시고 가니 기사는 총에 다치신 줄 알고 놀라 병원으로 모신다고 난리였다.

조 포수 쪽에서는 계속 총소리가 났다.

기억으로는 열 발은 족히 더 쏜 것 같았다.

한참 기다리니 조 포수도 내가 안 올라오니까 궁금해서 내려 왔다.

그런데 매단 꿩이 하나도 없다.(그 때는 워낙 어려울 때라 조끼를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 탄띠에 매달

았음.)

"햐! 오늘같이 총 안 맞는 날은 처음 보네. 원장님! 맏아드님 때문에 주눅이 들었나 봐요. 내가 한수

가르치기는커녕 내가 배워야 되겠는데요."

"그 동안 어디서 배웠는지 불질(총질의 옛말)이 기가 막힙디다. 나도 이젠 늙었나 봐요."

선친께서는 아프신 것도 잊으시고 몸을 좌우로 흔드시면서 "예끼! 이 사람! 내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먼!" 하시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뜻밖에 너무 일찍 귀가하니 아내도 어머니께서도 놀라셨다.

그래도 선친께선 "큰 며느리가 응급조치 약을 챙겨 주었으니까 말이지, 혼날 뻔 했어. 얘야, 고맙다.

앞으로는 붕대도 챙겨야겠다."

사실 그 시절은 약국도 면소재지에는 거의 없었다.

군청소재지에 가야 자그마한 병원이나 약국이 있을 뿐이었다.

또 병원이 없는 군청소재지도 많았고 도청소재지에 가야 겨우 도립병원이 있을 정도였다.

그 후부터는 나는 항상 구급약, 소독약, 지혈제와 붕대를 꼭 챙겨 가지고 다닌다. (그 후 여러 번 우리

일행이나 개가 다쳤을 때 도움이 많이 되었음.)

다음날 선친 친구이신 최경록 회장님과 이두병 회장님께서 축하 전화를 주셨다.

"축하하네! 자네! 젊기도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하더니 이젠 우리 보다 월등히 실력이 있는 엽사가 되었

구먼!"이라 하시면서.....

아마도 선친께서 조포수는 꿩을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우리 큰애가 1시간 반 동안 4마리나 잡았다고

자랑을 하셨나 보다.

이렇게 해서 사냥꾼이 되어 꿩을 잘 잡기는 했지만 전편에 이야기를 했듯이 몇 주 잘 잡으면 나도

모르게 건방져서 또 몇 주를 헤매게 되고, 또 잘못을 깨닫고 마음을 비우면 잘 잡히고, 이것이 나이를

먹은 지금 까지도 반복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땡포수 티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자꾸 반성을 하게 되면 헤매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요사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진짜 땡포수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씁쓸하

다.

엽장(獵場)은 비좁고 게임(game:사냥 대상물)이 너무 없어 오래간만에 만나니 더 심해지는 것일까?

그야말로 꿩보다 사냥꾼이 더 많아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너무 먹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