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려진 개머리판 -- 그리운 아버님 1962년 입대 후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다. 아버님께서 장농을 여시더니 여지껏 한 번도 구경해 보지도 못했던 엽총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스페인제인데 글을 읽을 줄 몰라 엽총이름도 모르신다는 것이다. 총포 소지허가증에도 스페인제로만 되어있고 총명엔 빈 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딕체로 "에이바 벨롯타" 라고만 쓰여져 있어 "에이바" 회사에서 만든 "벨롯타"인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 흐뭇해 하셨다. 엽총을 처음 보는 것이지만 말씀 그대로 고급 엽총같이 보였다. 액션부분(기관 부분)은 싸이드 락(sidelock)에 조각도 꽃무늬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천연색으로 꽤 화려하고 멋있게 착색이 되어있었다. 선친께선 또 "이 총이 꽤 비싼 건데 나만 쓸려고 산 게 아니라 다음에 너에게 물려주려고 좋은 총을 샀으니 그리 알아라!"하시면서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하시는 것을 보고 귀대했다. 얼마 후 제대하여 보니 그 엽총이 선친 고향후배이자 사냥선배인 황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개머리가 2cm나 잘려 있었다. 아마 그 분은 체격은 좋았으나 팔이 많이 짧았었던 듯 자기 팔이 표준인 줄 알았나 보다. 내가 견착(肩着:총을 겨냥하려고 어깨에 대는 행위)을 해 보니 총구가 위로 뜨는 것이다. "아버님! 개머리판을 왜 자르셨어요? 겨냥이 안 되는데요?" 아주 총을 병신으로 만드신 것이다. 하여튼 그 총으로 꿩이 잡힐 수가 있나? 떨어졌다 하면 그건 후로쿠(요행)이었을 것이다. 제대 후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선친을 모시고 사냥을 따라갔었다. 선친께서는 늦게 입문하셔서 총을 쏘시는 실력이 별로신지라 꿩은 한 마리라도 가지고 가셔야 체면이 서시는지 총이 없이 따라온 일동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직업포수에게 그 명총(名銃)을 주어 대신 사 냥을 하게 하셨는데 몇 번 불질(총질의 옛말)을 해도 맞지 않는 것이다. 무슨 명포수(名砲手)가 명총(名銃)을 가지고도 꿩도 못 잡는가 하고 주위 엽사(獵師: 사냥꾼)들에게 책망을 받았는데 총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이상하다, 가늠이 안 된다만 했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웠던가? 이 땡포 박이 아무리 어려도 그래도 육군에서 과학적으로 훈련을 받았는데 총이 개머리가 짧아서 겨 냥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듣질 않으셨다. 한 번은 사냥을 가시는데(겨울 방학 끝나는 2월 하순 경) 나도 수통을 차고 짐꾼으로 따라갔다. 2월인지라 좀처럼 꿩을 만날 수가 없었다. 오후 4시쯤 되니 너무 힘이 드시는지 네가 가지고 다녀라 하시면서 총을 건네 주셨다. "이런 논두렁에서도 가끔 꿩이 날기도 하는데..." 하시면서 뒷짐을 지시며 내 뒤 옆으로 따라 오셨다. 정말로 꿩이 그 말씀을 알아들었는지, 말씀이 끝나자마자 내 뒤에서 "꽈드등!"하며 별안간 시뻘건 묵은 장끼가 뜨는 것이다. 한 40도 각도로 곧장 날아 올라가는데 생전 엽총을 쏴 보지도 못한 나는 순간 놀랬지만 돌아서자마자 대충 꿩 만 보고 "꽝!". 아! 그런데 그 꿩이 푸드덕! 푸드덕거리며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선친께선 "야! 네가 군대를 갔다 오더니 정말 제법 총을 잘 쏘는구나!" 하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올려놓고 쏴(군대 M1 소총 PRI 훈련 때 얻은 습관: 이 버릇을 고치느라고 무척 고 생했음) 분명 꿩 꼬리나 쐈을 것인데 개머리가 짧아 총구(銃口)가 위로 겨냥이 되었으니 명중이 될 수 밖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다음해 대학졸업 선물(?)로 부라우닝 5연발 신품으로 사 주셨다. 하여튼 이 선친 명총은 날치기는 잘 안되고 복치기(앉은 새를 쏘는 것)만 되는 불량엽총으로 전락을 하게 된 것이다. 선친께선 총도 무겁고(3.4kg) 또 잘 맞지를 않던 중 그 당시 선친께 늘 신세를 지던 최두열 치안국장 (지금 경찰청장: 그 당시는 위세가 대단했음)이 직접 일본에서 수입한 미국제 윈체스터 3연발 모델 53 스틸 화이바 그래스(12ga. 3kg, 스페인 명총은 3.4kg)를 선물로 받으셨다. 그 때는 그 총이 제일(?) 가벼운 것으로 알았다. 이 총을 가지시고 사냥을 하시는데 30%이상 꿩을 떨어뜨리시니 얼마나 기분이 좋으신지 그 때서야 스페인제 명총의 개머리를 잘못 자르신 것을 깨달으시게 되었다. 이제 후회한들 무엇 하겠는가? 또 가끔 외국 대통령이나 수상이 방한(訪韓)할 때면 관례상 엽총을 경찰서에 영치(嶺置)해야 되는데 꼭 파출소 직원(순경)들이 찾아 갔다. 또 어디서 말씀을 들으셨는지 영치시키다 분실할 염려도 있고 총이 녹슬거나 망가질 수가 있다고 해(꽤 비싼 명총이라고 호기심에 만져 보다가) 일본제 SKB 엽총을 사셔서 멋있는 꽃무늬로 조각하여 각인을 다 지워 버리고 스페인 총과 똑 같이 총 번호, 조각, 문자를 새겨 넣어 가짜 스페인 총을 영치 시키고 진짜 스페인 명총은 동생과 나만 알게 안방 천정에다 잘 숨겨 두셨다. 그리고 다음에 네가 쓸 때 다시 수리를 하라 하시고 절단된 개머리 조각을 나에게 주셨다. 이 명총이 1972년 수렵이 끝나고도 계속 금렵이 되는 바람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심심하면 불법총기를 신고하라고 엄포를 놓는데 연세가 드실수록 마음이 약해지시는지 늘 불안해 하셨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또 신고하면 책임을 묻지 않고 허가도 내주겠다고 TV만 틀면 나오니 점점 불안하 여 노이로제 증상까지도 생기셨다. 할수없이 내가 그 스페인 명총을 들고 성북경찰서로 출두하니 담당자는 물론 과장까지도 모두 놀라는 것이다. 어떻게 조각의 문양이 똑 같을 수가 있느냐고..... 그러면서 한 가지 이름으로 엽총을 두 개로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거다. SKB 엽총을 다시 스페인 글씨와 문양을 지우고 다시 원래의 일본제로 만들어오겠다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여지껏 불법무기 캠페인은 왜 했느냐고 아니면 청화대에 가서라도 따지겠다고 거칠게 나오니 과장이 웃으면서 해 오란다(그 때에는 엽총가진 사람은 꽤 대우를 받았음. 돈 있고 빽이 든든하리라 믿었기 때문. 더군다나 치안국장이 선물한 엽총도 있었으니까). 이젠 그런 장인(匠人)들은 다 이 세상 분들이 아니시겠지만 워낙 일이 없던 터라 일금 2천원에 영자 글자를 그림으로 조각해 다시 지워 버리고 빈칸에 SKB와 Made in Japan을 기가 막히게 다시 새겨 넣는 것이 아닌가? 그 훌륭한 조각솜씨에 너무도 놀랐다. 수고가 많았다고 5천원을 건네니 감사하다며 너무 좋아 쩔쩔 매는 것이다. 이 문자를 개조한 엽총을 경찰서에 가져오니 또 모두들 놀란다. 하여튼 이렇게 해 엽총 한 자루가 더 생겨 막내 동생에게 물려 주셨다. 지금은 그 총을 이 땡포 박 막내아들에게 또 물려주었지만... 또 스페인 명총은 큰아들에게 물려 주었 고..... 새로 장만하신 윈체스타 엽총으로 한참 재미를 붙이셨는데 그만 박정희대통령시절 유신이후 73년부터 그만 금렵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자연생태보호로 한 해만 금렵한다는 것이 두 해, 세 해 계속 금렵이 되었다. 애타게 급렵 해제(禁獵解濟)를 기다리시다, 기다리시다 못해 엽기를 다시 개방하기 1년 전 1981년 먼 세상으로 떠나셨다. 1년만 참으셨으면 다시 한 번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사냥을 해 보시고 가셨을 터인데..... 지금도 1966년 경기도 이천 고향 근처에서 선친을 뫼시고 사냥을 하던 생각이 난다. 선친께선 길을 따라 가고 계시고 나, 땡포 박은 선친보다 오른 쪽 20m 떨어진 논두렁을 지나가고 있 데 선친 왼쪽 산비탈 진흙 위에 커다란 장끼가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앗! 아버님! 아버님 왼쪽 10m 앞에 장끼가 있어요!" "어디? 안 보이는데...?" 어라! 풀이 한줌도 없는 진흙 위에 큰 장끼가 납작 엎드려 있는데 안보이시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얘! 꿩이 어디 있니? 너 무얼 잘못 본 것 아니니?" 참, 이상하다. 풀이 있으면 몰라도 빤빤한 진흙 위에 까투리도 아니고 장끼를 못 보시다니....? 나도 혹시나 하여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틀림없는 장끼다. 그래도 욘석은 날지 않고 있다. 그 땐 땡포 박이 초보 때라 날면 자신이 없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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