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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05-29 14:36
 조회 : 27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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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맹수사의 아침은 생후 120일이 된 아기호랑이 ‘크레인’의 분 유를 타는 것에서 시작된다.‘30㏄씩 하루에 여섯 번’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엄기용(49)·한효동(46) 사육사의 취침시간은 5시간으로 줄었다.그것 도 여기저기 호랑이 이빨자국이 난 소파 위의 새우잠이다.
“우리 애 기를 때도 젖병 한번 안 만져봤는데 말입니다.”
말 못하는 짐승과 17년 세월을 보내면서 사육사 한씨가 배운 것은 ‘젖병 은 소독해야 된다’라거나 ‘황금색 똥을 누면 건강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이제 말하지 않는 것과 대화를 나누는 반인반수(半人半獸) 호랑이 아빠 가 되어가고 있다.
●울며불며 시집간 ‘라거’
사람도 그렇다.삶은 감자 나눠먹던 동네총각과 결혼하면 좋을 것을 상냥한 누이는 산 너머로 시집을 가버리곤 하지 않던가.지난해 12월 6일 맹수사에 서는 곱게 기른 암호랑이 ‘라거’를 광주시에 있는 우치동물원으로 시집보 냈다.털색이 주홍에 가까운 누런색이라고 ‘라거’라는 맥주이름을 지어준 예쁜 암놈이었다.한배에서 태어난 숫호랑이들의 이름은 덩달아 ‘하이트’, ‘카스’.워낙 우애가 좋던 터라 시집가는 날 아침은 호랑이들의 울음바다였 다.오히려 의젓했던 것은 ‘라거’.철망이 죽죽 그어진 트럭에 올라탄 ‘라 거’는 친정 동물원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그 모습이 가슴에 남아서 두 사육사는 몇 달간 잠을 설쳤다고 한다.그런데 요즘은 ‘라거’가 생각날 때 마다 사육실 한 구석에 있는 비디오를 본다.
광주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라거’의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왔기 때 문이다. “시집보낼 때는 그렇게 속상하더니,가서 잘 사는 것을 보니 좋더라 고요.” 눈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가 친정아버지 못지않다.
●젖먹이 백호 ‘베라’기르기
하나 둘 뽀얀 젖니가 나면서 사육사들의 신발이 남아나질 않았다.뒤축이 씹던 껌처럼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보면서도 그냥 미소였다. “백호라는 걸 처음 받아봤는데 어쩐 일인지 어미가 젖을 먹이지 않는 거에요.”
99년 2월 마지막날 태어난 백호 ‘베라’는 그래서 처음으로 사육사들 손 으로 키운 인공포유 호랑이가 됐다.첫번째 백호이다보니 언론의 스포트라이 트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몇 달간 공모를 거쳐 시베리아호랑이에서 ‘ 베’자를 따고,신들의 여왕 헤라의 ‘라’자를 따 ‘베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그러나 탄생의 기쁨도 잠시,까탈스러운 베라여왕의 시중을 드는 나날 이 시작되었다.“똥 색깔만 달라져도 덜컥 걱정이 되죠.아프단 소리 한번 못 하고 앓는 것을 볼 때 제일 속상했습니다.”
그런 ‘베라’가 벌써 세 살,과년한 처자가 됐다.이제 첫번째 발정기가 되 면 ‘베라’도 자기를 꼭 닮은 하얀 백호의 어미가 될지 모른다.
●호랑이 사육사로 산다는 것
신학기가 시작되면 사육사네 아이들 발걸음이 유난히 바빠진다.뺨에 난 상 처가 잘 보이는지 거울도 본다.반 친구들이 “야,너 뺨에 난 상처 뭐야?”하 고 물으면 으쓱해진 아들녀석은 말한다. “우리 아빠가 서울대공원 호랑이 사육산데 어제 호랑이랑 놀다가 긁힌 거야.”
한 달에 채 열흘도 집에 못들어가지만 자식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멋진 아버지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호랑이 사육사’이기 때문이다.세상에 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맘대로 호령하는 사육사.친구들에게 호랑이를 자랑 하던 아이들이 벌써 자라서 한 가정을 이뤘다.이제는 명절이면 손자들을 앞 세운 세배행렬을 동물원에서 맞는다.
●건강한 동물원 만들기
요즘에는 매스컴의 영향 때문인지 사육사가 되고 싶다며 찾아오는 젊은이 들이 부쩍 늘었다. “좋아하는 동물을 매일 볼 수 있으니 월급은 안 받아도 좋다”는 식의 열정은 좋지만 덩치좋은 초식동물을 상대하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더구나 우리나라는 사육에 관한 전문적인 기관이 없는 상황이라 모든 것을 도제식으로 배워야 한다.이 때문에 열정을 가진 젊은이 들도 나가떨어지는 일이 많다.
“전문적인 기관에서 국가가 인증하는 사육사를 키워내는 것이 급선무”라 고 엄씨는 말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물에 대한 배려다.야행성인 호랑이는 낮에 는 숙면을 해야 생활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그러나 모처럼 가족나들이를 나 온 사람들은 늘어지게 낮잠자는 호랑이가 야속하다.이런 경우 돌팔매질을 해 잠자는 동물들을 깨우는 몰지각한 사람이 열에 일곱이다.
엄씨는 “동물원 호랑이들은 대부분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심합니다.우리에 갖힌 맹수를 자극하는 것은 잔인한 행동입니다”라며 관람객들에게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긴 겨울의 끝자락.이제 서울대공원은 뒷산에 눈녹는 소리를 들으며,왁자지 껄 몰려올 봄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동물원에서 보낸 17년의 세월에 또 한 번 의 봄이 추가되는 셈이다.
58세 정년을 생각하면 이제 동물원에서 지낼 시간이 각각 9년,12년 남은 셈이다.가끔 이 생각을 하노라면 자식 같은 호랑이를 못본다는 게 벌써부터 괴로워진다.
“아마 동물원을 그만두게 되면 호랑이 우리로 매일 출근도장 찍게 되지 않을까요?” 그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사육사 이야기를 하며 관람객들의 좋 은 안내자가 되고 싶은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 박효실기자gag11@sportsseou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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