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아주 끈끈한 분의 글입니다..
학식도 대단히 깊고 겸손한 인품을 지녔으면
봄가을로 그분의 농원에서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해서 가든파티도 열고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낙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농원에 2번이나 다녀 왔는데 얼마나 먼지 그곳에 오라고 하면 즈레 겁부터 나기도 합니다..
그분의 글을 읽을적마다 찐한 감동을 느껴 주인의 허락도 없이 퍼 왔읍니다..
저는 이분보다 더 좋은 추억이 있다해도 절대로 이분만치 글을 쓰진 못할것 같읍니다..
해마다 7월이 되어 장마가 시작되면서 습습함이 계속되면,
유년시절의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었던 두아이와 함께
좁다란 학교길을 이마를 마주대고 걷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려 집니다.
한 남자아이는 여기저기 머리가 쭈빗쭈빗 솟아 올라 보기에도 흉하고
낡고 지져분 해지다 못해 솜이 삐져나와 아무데나 내 팽겨쳐진 인형 같았고,
한 여자아이는 구슬 장식 달린 유럽풍 옷을 잘 차려 입고 머리를 곱게 두갈래로 땋아내린
유리속에 인형 같은 아이 였습니다.
남자아이는 [똥식]이라고 불리워졌지만 그아이의 이름은 동식이 였고
여자아이가 [유미]라고 불리워진 이유는 그 아이의 이름이 “유미” 였기 때문 입니다.
유미의 집은 우리집 맞은편에 있는 멋진 양옥집 이였고,
그아이의 엄마는 첩은 아니지만
요정의 기생 출신으로 본부인이 죽고 난후 자유당 시절 장관집 둘째부인으로 들어 앉은
목이 유난히 하얀 그런 여자 였습니다.
똥식이의 집은 우리집에서 20분 정도를 남산 약수동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보이는 산 중턱에 걸려있는 낡은 판자집 이였습니다 .
그 아이의 엄마는 양공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흑인 병사가 모는 지붕이 없는 지프차를 타고 다니면서 미제 물건을 팔러 다니는
어깨가 넓은 그런 여자 였습니다.
제가 유미를 좋아한 이유는
엄마를 닮아 예쁜
갸름한 얼굴과 흰 목덜미도 그랬지만
그아이 왼쪽 가슴에 반짝이는 철제 옷핀으로 단정하게 걸려 있는
하얀 손수건이 항상 깨끗하였기 때문 입니다.
또,
그당시에는 보기힘든 아빠의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이 너무
신비 스러웠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똥식이를 싫어한 이유는 그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그랬지만,
백환 이면 살수 있는 신발 주머니를 살 처지가 못돼 검은 헝겊으로 어설프게 꿰멘
더러운 신발 주머니를 갖고 다니는것과 코를 흘리고 다니면서도 한번도 빨지 않은
누런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녔기 때문 입니다.
유미는 여름이 되면
가끔 똥식이 집앞에 흘러 내리고 있는 남산 계곡물 바위틈에서 공기돌을
줍는다거나
겨울이 되면 집앞 언덕에서 다른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걸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였고,
똥식이는 여름이 되면 바구니를 등에 지고 길바닥에 나 딩구는 휴지나 녹쓴 고철등을 열심히 줍는 일을 하고
겨울이 되면 땔감을 구한답시고 남산 수풀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열심히 마른 나뭇가지를
구하고 다니는 것이 고작 이였습니다.
국민학교 2학년이 되면서 그렇게 띄엄띄엄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똥식이와
유치원을 같이 다니면서 3년을 친하게 지낸 유미와 저는 같은 2학년 1반이 되였습니다 !
유미와 같은 반이 된 건 너무 기분 좋은 일 이였고,
똥식이와 같은 반이 된 건 너무 기분 나쁜 일 이였습니다.
유미는 착한 마음씨로 반 친구들에게 항상 인기가 있었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유당 시절에 장관을 지낸 이유도 있겠지만,
학교에 넉넉히 희사하는 사친 회비 덕분인지 선생님들 한테도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똥식이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공부시간에 멍하니 운동장을 쳐다 본다거나
칠판에 적어놓은 쉬운 산수 문제를 못 풀어 항상 선생님들 한테 꾸중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그아이의 큰아버지가 9.28 서울 수복때 빨갱이를 따라 월북을 했다는 소문 때문에
선생님들 조차 그아이를 꺼려 하였습니다.
봄소풍이 되면서
도시락을 못 싸오는 가난한 집 반 아이들을 위하여
넉넉한 아이들에게 대신 김밥을 싸다주는 자원자를 뽑는 시간 이였는데,
똥식이의 소풍 도시락을 대신해 줄 친구를 찿는 시간에
불쑥 유미가 손을 들었습니다.
얼굴이 빨개진 똥식이가 쉬는 쉬간에 유미에게 다가가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너무 역겹워
하마터면 그아이의 더러운 머리통을 흠씬 때릴뻔 한적도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똥식이에게 유미가 친절을 베푸는 것에 대해 화가 나는건
똥식이 때문에 유미와 내사이가 멀어지는 것이 무척 싫었기 때문 입니다.
질투심을 억제하지 못한 궁리끝에,
결국
반아이들을 선동하여
봄 소풍날 혼자 나무그늘 아래서 유미가 정성스레 싸다준 김밥을 먹고 있는 똥식이에게 다가가
반아이들끼리 바닥에 있는 흙을 긁어 모아 도시락에 뿌리고 도망치는 그런짓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똥식이가 나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말없이 당하고만 있는 이유는
그아이가 나보다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고,
내 위로 등치큰 형들이 세명이나 있는것도 그랬지만,
내가 기르고 있던 독일산 세퍼트가 더욱 무서웠던 모양 입니다.
그것 만으로도 부족한 생각이 들면,
가끔
잘 훈련된 세퍼트를 끌고 나와 똥식이가 집으로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더뿌(세퍼트 이름)를 풀어
똥식이가
겁에 질려 혼비백산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통쾌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행동으로 겨우 분을 삭이곤 하였지만,
나의 그런 행동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유미는 여전히 똥식이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등교길(우리들이 살고 있었던 필동에서 충무로에 있는 학교 까지는 40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거리 였습니다) 에서 똥식이를 보기라도 하면
자기가 타고 가던 차를 태워 주기도 하고 하교 길에는
비싼 삼강하드 아이스케키를 사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곤 하였습니다.
그런 똥식이에게 어린 나이에도 불구 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낀건
가정 방문때의 일이 있은 후 였습니다.
의례로 봄 소풍이 끝나고 나면 ,
담임선생님들이 가정 방문을 시작하였는데
다음번에 방문할 친구 집을 미리 알아 둔후
선생님이 자기집을 방문 하고 나면
다음 번 아이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그런 식 이였습니다.
마침 똥식이의 집이 우리집에서 가까운 터라 다음의 가정 방문지라고 선생님이
일러 주었는데,
나의 안내로 따라간 담임선생님과 같이
처음으로 똥식이가 사는 곳을 들여다 볼수 있었습니다.
다다미 두장 정도의 넓이의 안방 (그이상의 방도 없었지만)의 모습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본 그런
처참한 것 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이후 갑자기 똥식이가 측은해 지기 시작했고,
그날 이후 그아이를 보면 진심으로 아껴주고 잘 대해 주었는데,
어떨 땐 똥식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밥을 같이 먹는다거나 산수를 가르쳐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내 모습을 거울에 비쳐 보기도 하면서 내자신을 기특해 하기도 하고,
남들이 이사실을 알면 큰 상을 내려 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일들로 유미하고도 더욱 가까워 질수 있었는데,
아마 유미는 내가 뒤늦게 알았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듯 하였습니다.
똥식이가 이런 나의 호의를 자기엄마에게 이야기 했는지,
때로 길을 가다 똥식이 엄마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 두손을 꼭 잡아 주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럴때
혹시 흑인의 피가 내손을 타고 흐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달갑지는 않았지만,
가끔 문방구 아줌마가
내가 연필을 살 때 똥식이의 엄마를 양공주라고 비웃기라도 하면
나쁜 양공주가 아니고 좋은 양공주라고 일일히 설명 하는 것을 잊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유미를 가운데 두고 다정히 셋이서 집으로 돌아오며
찍어먹기 (국자 같은 곳에 설탕을 넣은후 소다를 뿌려 부풀린 과자) 를 잘 부풀려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우리집이나 유미집에서 모여 숙제를 같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내 행동을 꼬가와 하는 반 아이들은,
똥식이와 유미 그리고 나를
점점 멀리 하였지만 유미와 가까워질수 있었기에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쯤이 지나고 3학년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
아버지의 사업 문제로 지금의 이화동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봄방학중에 갑자기 내려진 결정이였기에
반 아이들에게는 떠나는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고
모든 식구들이 이사 준비로 짐들을 싸느라 부산 하기만 한 늦겨울,
이소식을 전해 들은 유미와 똥식이의 방문으로 이사를 하기 이틀전
그아이들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보통때 우리들이 자주 놀러 갔던 남산 개울가에 모여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아쉬움에 웃음을 잃은채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유미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 아이의제의는,
이다음에 우리가 어른이 되어 셋중에 혹시 누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를 도와 주자는 헤어짐의 위안 이였습니다.
그런 다짐을 위해 우리 셋은 비오는 개울가에서
작은 의식을 치루었는데………………………..
똥식이가 구해온 미제 빈깡통에 서로의 소지품을 넣은후,
선바위 (개울가에 우뚝선 큰바위) 아래에 묻고 난후
이런 우리들의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 하였습니다.
똥식이는 열심히 땅을 파고,
유미는 우리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나는 똥식이가 쉽게 땅을 파기 위해 흐르는 물을 널판지로 막아 주었습니다.
똥식이는 아이노꼬(유리에 무늬가 들어간) 구슬을…………………
유미는 입고 있던 고급스러운 스웨터에서 뜯어낸 단추를………………
나는 주머니에서 꺼낸 오십환 짜리 빨간 지폐를……………………
그 일이 있는후,
가금씩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내기는 했지만,
후에 똥식에에게 들은 이야기 로는
유미 역시
아버지의 파산 (군사혁명으로 자유당 시절 부정 축재 관리의 축출로 인해)
으로 대전 지방으로 이사를 간 후 무진 고생 끝에
엄마의 권유로 고전 무용을 전공 한 후 강단에 섰고………………………………..
똥식이 역시 공업학교를 졸업 후 독일에 건너가 기계에 관한 기술을 익히고
미국에 건너가 조그만 공장을 차려
남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 할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을
똥식이는
이십년 전부터
일년에 한 두번씩 나에게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유미와 자기의 사는 모습을
알려 주곤 하였는데,
한두달 전쯤 똥식이로부터 전화를 통해 유미의 소식을 또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유미가 말이야 남편과 불화가 있어 이혼을 한데다가 엄마의 지병이 겹쳐
무척 어렵게 살고 있나봐”
“유미가 마음 고생이 크겠구나”
“그래서 상익아 !마침 미국 교민회관 에서 고전 무용을 가르치는 일자리도 있고,
내가 갖고 있는 아파트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묶으면서
엄마 병도 치료 할 겸 내가 미국으로 오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라”
“그런 좋은 기회를 유미가 마다 하는 이유가 뭔데?”
“나도 모르겠어…….!
“음…………………….”
“아뭏튼 좋은 소식은
유미가 나 한국에 오면 너랑 같이 만나고 싶다고
꼭 연락해 달라고 하더라 ….
추석이 되면 나도 어머니 보러 서울 가니까 우리 셋이서 한번 꼭 만나자
선바위에도 가서 미제깡통도 파볼 겸…………………………………………………………”
전화를 끊고 난후
과거의 타임 머신을 타고 날아 온듯한 똥식이의 목소리에
그날 만큼은 중요한 거래처와의 약속도 잊은채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유년의 약속을
아마 똥식이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나 봅니다 !
그리고 또,
아마 유미는 똥식이에게 만큼은
항상 풍요로운 시절 유년의 여자친구로만 남고 싶었었나 봅니다 !
혹시 그아이들을 만나는날 비가 온다면
몇십년이 지난 장마철 하교 길에 유미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노래를 부르며
셋이서 나란히 우산을 쓰고 좁은 필동 길을 걷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슬비 나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 갑니다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우산
좁다란 학교길에 우산 세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 갑니다”
그해 여름
유미는 정말 파란우산을 쓰고 있었고
똥식이는 정말 찢어진 우산을 힘겹게 쓰고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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